“형제들이여. 서양인에 대항해 싸워보지 않겠는가? 인생에서 옳은 선택을 하라.”
벨기에 브뤼셀 테러가 발생한 닷새 뒤인 지난달 27일 밤, 브뤼셀 몰렌베이크 지역의 무슬림 청년들에게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신자 불명의 번호로 온 이 메시지에는 서구에 대항해 싸우자는 짧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 몰렌베이크는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청년 실업률이 50%에 이르는 가난한 도시다. 지난달 18일 파리 테러의 유일한 생존 용의자인 살라 압데슬람이 은신하다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브뤼셀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도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선전전은 이어졌다.
2014년만 해도 컴퓨터에 기록 남겨
통화 감청으로 테러계획 모두 노출
폭발물 제조·폭파 방법도 어리숙
2015년 들어 테러범들 깜짝 변신
터키 웹사이트로 IS와 정보공유
접속기록 지우고 이메일 안써 감쪽
사제폭발물 다루는 기술 전문가급
테러조직 날개 단 건 허술한 보안 탓
2011년 이후 IS행 유럽인 최대 3만
이들 감시할 통합감시체계 전무
국가간 안보정보 공유하기 꺼려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히면서도, 해외 전투원들을 훈련시켜 유럽 도시를 중심으로 한 테러 공격을 확대해 나갔다. 지난해 11월 130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 테러와 지난달 32명의 사망자를 낸 브뤼셀 테러는 ‘외로운 늑대’들의 돌출 행동이 아닌 이슬람국가의 조직적인 공격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브뤼셀 테러가 일어난 직후 “테러 조직의 일부분이 제거되더라도, 여전히 다른 위협이 남는다”며 유럽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슬람국가 테러 조직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렇다면 이슬람국가는 어떻게 유럽에 촘촘한 테러 조직을 구축했을까? 전문가들은 불과 몇년 새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슬람국가의 테러 전략과 그에 견줘 허술한 유럽의 보안 체계가 잔혹한 테러 공격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 유럽, 테러와 IS의 연결고리를 놓치다 2014년 5월, 프랑스 출신의 메디 네무슈는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벨기에 수사 당국은 네무슈의 휴대폰에서 미리 찍어둔 영상을 발견했는데, 영상에서는 자신이 테러를 계획했다고 주장하는 네무슈 옆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라는 문구가 쓰인 깃발이 등장했다. 테러를 벌이기 한 달 전에는 네무슈가 이슬람국가의 해외 테러 총책으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와 24분간 통화한 기록도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검사는 “네무슈는 혼자 테러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테러와 이슬람국가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2014년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수사 당국은 유럽 곳곳에서 일어났던 테러 공격의 원인을 정신질환과 같은 테러범의 개인적 문제로 돌렸다. 이러한 테러들이 이슬람국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것은 2014년 6월, 유럽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계획했던 프랑스 국적의 파이즈 부슈란이 체포된 뒤였다. 부슈란은 자신에게 테러를 지시한 사람이 이슬람국가의 대변인이자 주요 조직원이었던 아부 무함마드 아드나니라고 자백했다. 반테러리즘 전문가인 마이클 스미스는 “여러 징조가 있었지만 2014년 중반까지 유럽 수사 당국은 테러와 이슬람국가 간의 연관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IS, 유럽의 감시망을 뚫다 23살의 이브라힘 부디나. 프랑스 출신의 그는 시리아를 방문한 뒤 유럽에서 테러 계획을 세웠던 첫 번째 유럽 국적의 시민이었다. 프랑스에서 테러 공격을 모의하고 있었던 부디나는 2014년 2월 경찰에 체포된다.
프랑스 수사 당국은 부디나가 사용한 컴퓨터에서 ‘비밀 터널로 인터넷 접속하는 법’, ‘아이피(IP) 주소 바꾸는 법’ 등의 검색 기록을 발견했다. 온라인 채팅에서는 이슬람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도 나왔다. 부디나는 체포 직전까지 자신의 흔적을 컴퓨터 곳곳에 남기는 등 허술한 행적을 보였다.
29살의 레다 하메. 프랑스 출신의 그 역시 시리아를 방문한 뒤 테러를 기획하고 있었으나, 2015년 8월 파리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부디나와는 달리 하메는 이슬람국가의 엄격한 보안 지시를 따랐다. 시리아를 떠나기 전 이슬람국가로부터 받은 유에스비(USB) 저장장치에는 컴퓨터 접속 기록을 지우는 프로그램과 암호화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메는 테러 시점이나 장소처럼 중요한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았고, 터키에 기반을 둔 웹하드 사이트를 통해 이슬람국가의 지휘관과 정보를 공유했다.
프랑스 수사 당국의 통화 감청으로 테러 계획이 모두 노출된 부디나와는 달리, 하메는 유럽 테러 조직의 총책인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의 터키 전화번호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상대적으로 감청이 촘촘하게 이루어지는 시리아 전화번호에 비해 터키 전화번호에 대한 감청은 느슨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불과 1년 만에 구체화된 이슬람국가의 보안 전략은 유럽의 감시망을 뚫고 유럽 내부로 스며들었다.
■ 테러범, 폭발물 제조법 마스터하다 폭발물을 다루는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유럽 조직원들은 ‘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TATP·티에이티피)라고 불리는 화합물 폭탄을 직접 제조했다. 아세톤처럼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질로 제조가 가능한데다 폭발력이 매우 강력했지만, 작은 충격에도 쉽게 폭발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물질이기 때문에 그만큼 다루는 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2014년 프랑스에서 체포된 이브라힘 부디나의 자택에서도 티에이티피가 발견됐다. 3개의 음료수 캔에 각각 600g씩 들어 있었지만, 폭발물에는 조악한 도화선이 사용되는 등 미숙한 제조 흔적이 보였다. 부디나는 체포 전 인터넷에 ‘휴대폰으로 폭파하는 법’을 검색하는 등 제대로 된 폭발물 이용 방법도 알지 못했다.
반면 2015년 파리 테러와 이듬해 일어난 브뤼셀 테러에서 테러범들은 숙련된 기술로 사제 폭발물을 다뤘다. 파리 테러에서는 각각 450g의 티에이티피가 든 7개의 자살폭탄 조끼가 터졌고, 브뤼셀 자벤템 공항 테러에서는 14㎏에서 27㎏가량의 티에이티피가 든 가방 2개가 폭발했다. 대량의 티에이티피가 사용된 브뤼셀 테러는 불과 몇개월 만에 테러 조직원들의 폭발물 제조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줬다.
■ 허술한 유럽 감시망, 테러를 부추기다 시리아에서 훈련을 받은 조직원들은 원래 자신이 살던 유럽의 도시로 돌아왔다. 무슬림 지역에서 오랜 기간 함께 살았던 친구들은 훈련을 받고 온 친구에게 동화되어 구체적인 테러 계획에 동참했다.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브라힘과 칼리드 바크라위 형제는 이번 브뤼셀 테러에서 함께 공격에 가담했다. 벨기에 겐트대학의 릭 콜사트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테러 조직원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며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에서도 비슷한 조직망이 발견됐지만, 조직적인 공격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공격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체계적이지 않은 유럽의 보안 체계는 이러한 테러 조직에 날개를 달아줬다. 2011년 이후로 이라크와 시리아로 들어간 외국인 전투원은 2만5천~3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면밀히 감시할 만한 유럽의 통합 감시 체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해 터키 정부는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해 벨기에 당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벨기에 쪽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바로 이번 브뤼셀 테러범 중 하나인 브라힘 바크라위였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대니얼 벤저민 교수는 “유럽 국가들은 안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려한다”며 “이는 마치 2001년 미국의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매캔츠는 이슬람국가 테러의 특성을 ‘잔혹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슬람국가는 테러 공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보이는 곳마다 조직원들을 보낸다”고 했다. 201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유럽 국가를 목표로 이슬람국가가 시행했거나 영향을 미친 테러는 총 29건이며, 이로 인해 65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된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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