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성공회. (AP/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여부’ 국민투표 앞두고 기도문 공개
“여론을 형성하는 이들에게 아량을 주시고, 투표자들에게는 분별력을 주소서.”
영국 성공회가 26일 발표한 기도문이 ‘정치 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는 오는 6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날 짧은 기도문을 공개했다. 영국 성공회가 발표한 기도문은 문구만 봐서는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지 않다. 주석이나 평론도 없다. 그러나 기도문 구절이 모호한 만큼이나 영국에선 이 기도문에 대한 제각각의 해석을 낳고 있다.
기도문의 전문은 이렇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장인 성공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개입한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모임인 ‘영국을 위한 크리스찬들’의 아드리안 힐튼은 교계 온라인 매체 <크리스찬 투데이>에 “기도문에 언급된 ‘모든 유럽 사람들’이란 표현은 찬반 토론의 초점을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여부에서 ‘유럽의 정체성’으로 옮겨버렸다”며 “유럽의 평화와 공공선을 위해 일하려고 꼭 유럽연합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꼬집었다.
역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보트 리브’(탈퇴에 투표하세요)의 한 대변인은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에 “안타깝지만, 우리의 국경과 경제와 매주 유럽연합에 내는 3억5000만 파운드(의 분담금)을 되찾기 위해선 기도 말고 (다른 게) 더 필요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반면 성직자 출신의 크리스 브라이언트 의원(노동당)은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팩트(사실)들을 전혀 내놓지 못한다”며 “그들이 찬반 논쟁에서 이기려면 희망과 기도 말고도 (다른 게)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지난달 영국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브렉시트 투표에 대한 신자들의 올바른 관점 같은 것은 없다며 중립적 입장을 밝혔다. 데이비드 하미드 보좌주교도 일간 <가디언>에 “영국 성공회는 국교이며, 모든 사람을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대해야 한다. 교회는 중립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개인적으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적극 지지한다. 유럽에서 영국 여권 소지자(영국 국적자)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영국이 유럽공동체와 연결된 이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가톨릭교 지도자인 빈센트 니콜스 추기경도 “기독교는 화합을 믿는 오랜 전통이 있다”며 “만일 투표에서 ‘브렉시트 찬성’이 나오면 우리가 유럽연합의 일부로서 활동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들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진실의 하나님, 우리가 이번 투표를 정직함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여론을 형성하는 이들에게 아량을 주시고, 투표권자들에게는 분별력을 주소서. 우리나라가 번영하게 해주시고, 우리가 모든 유럽 사람들과 함께 평화와 공공선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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