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한국인 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파독 간호사 출신인 조국남(가운데) 독일이주여성단체연합(DaMigra)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주연 통신원
한국인 간호사 파독 50돌 간담회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 고통” 회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 고통” 회고
“어떤 지역에서는 독일에 온 지 2~3일 밖에 안된 간호사들을 실무에 투입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상태로 근무를 했던 경험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지난 26일 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맞아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이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열렸다. 독일이주여성단체연합(DaMigra) 대표이며 파독 간호사 출신인 조국남 대표는 파견 당시 한국 간호사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조 대표는 한국에서 받은 학위와 직업경력 등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일이 빈번했다고 보고했다. 조 대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환영했지, (주류사회로의) 통합을 원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주민 간호사에겐 현지 언어가 열쇠”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동료들이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주는 대신 마음대로 유럽식 이름을 지어 부르곤 했다”며“통합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잘 사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로부터 간호인력을 들여오는 것은 식민지적 방법이다. 이것이 서로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유럽중심적 사고”라고 말했다.
독일의 간병 시스템은 간호사가 전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구조다. 독일에서 간호사는 고강도 저임금 노동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일 젊은이들이 꺼리는 직업군이 되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독일국제협력공사(GIZ)는 지금도 독일에 부족한 간호인력을 메꾸기 위해 보스니아, 필리핀, 세르비아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최영숙 이사는 “당시 독일간호사 업무가 어떤지 사전에 알았다면 (심리적으로) 덜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간병은 환자 가족들이 많이 하는데, 독일은 달랐다. 굉장한 문화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재독여성모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독일공공노조 베르디, 코리아협의회 등이 참가했다. 토론회에서는 파독한인간호사들은 이주노동과 통합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고, 개선점을 제안했다.
재독여성모임 안차조 전 대표는 “50년 전 독일에서 간호사 인력부족으로 한국에서 간호사들을 모집했는데, 50년이 지난 현재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독일 간병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고, 임금인상과 사회적 인정이 절실하다. 그래야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직업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희영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10만명 간호사 파독으로 빚어졌던 한국사회의 간호사 부족현상, 68운동의 분위기로 정치의식화된 파독 간호사들의 한국 민주화운동 기여 등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쳤던 영향을 짚었다. 재독여성모임은 1970년대 말 독일이 경제 위기를 맞아 재독 한인 간호사들에 대한 강제해고, 송환을 반대하는 운동을 꾸리며 만들어진 단체다. 그후 80년대 한국민주화를 돕고, 독일 내 다른 엔지오(NGO) 단체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독일 내 이주민 단체로 자리잡았다.
브레멘 전 시장 헤닝 셰르프는 “미래의 노동은 사회복지분야”라며 “고령화 사회구조로 10~15년 뒤에는 간병분야에 더욱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그는 “지금 난민들이 우리에게 온 것은 도전이자 큰 기회”라며, “브레멘을 비롯한 한자도시는 옛날 정치난민들에게 문을 개방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런 기회다”라고 난민문제 해결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독일 간병 시스템 개선책으로 사민당 소속 하이케 베렌스 의원은 “간병분야 인력직업 교육을 대학교육으로 전향”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공공노조 베르디 사회보건담당 대표 질비아 뵐러는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제반조건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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