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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최루탄에 맞선 파리시민들 “복종을 거부하라!”

등록 2016-05-03 19:48수정 2016-05-04 00:37

국제 노동절(메이데이)이던 지난 1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한 도심 광장에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는 하는 시민들 뒤로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다.
국제 노동절(메이데이)이던 지난 1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한 도심 광장에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는 하는 시민들 뒤로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다.
노동개악에 성난 프랑스

목수정 작가의 노동절 르포

“이런 메이데이 행진은 처음이다.”

목수정 재불작가
목수정 재불작가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으로 격앙된 분위기에서 맞는 메이데이 행진에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의 탄식이었다. 1일(현지시각) 오후 3시. 하늘은 함성이 터질 만큼 맑았고 태양은 눈부셨다. 노조들뿐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들, 친구들과 어깨를 걸고 나온 고교생들, 이민자들, 문화단체들, 정치그룹 등 8만명의 인파가 각자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거리에서 5월의 꽃가루처럼 퍼뜨리며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 모였다.

터키, 알제리, 레바논, 쿠르드족, 팔레스타인 등 파리의 지붕 아래 사는 이 각각의 민족들은 그들의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과 독재자들을 폭로하고 결의를 전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전단을 서로에게 건네고, 노래하며 몸을 흔들면서. 카페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은 축제를 관전하듯 행진을 바라보고, 길가에 늘어선 아파트 베란다에선 시민들이 나와 손을 흔든다. 그렇게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던 메이데이 행진이 진행된 지 2시간이 지날 무렵,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소리에 발을 멈췄다.

노조·고교생·이민자·문화단체 등
바스티유광장서 8만명 평화시위
사회당 정부 ‘노동법 개정’에 성토

40년 메이데이행진에 최루탄 등장
대열 흩어짐 없이 나시옹광장까지
“모든 것은 우리 소유다” 밤샘시위

5시. 최루탄 터지는 소리였다. 메이데이 행진에 참여한 이 많은 평화로운 시민들을 향해?

“40년간 메이데이 행진을 함께 해왔지만, 최루탄이 행렬에 날아드는 건 처음” 이라고, 65살의 파리지엔은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메이데이 행진은 프랑스의 전통행사야”, “우리 세금으로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시민들은 소리쳤고, 경찰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두 번, 세 번…열 번… 최루탄은 멈추지 않았으나, 행진 대열도 흩어지지 않았다. 1시간의 대치 끝에 서서히 전진하여, 마침내 행렬은 목적지인 나시옹 광장에 이른다. 그때 50여명의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로 무장한 청소년들의 그룹이 경찰을 향해 일제히 화염병을 날렸다. 경찰도 일제히 최루탄을 쏘며 그들을 공격했다. 행진 중 자주 볼 수 있던 자유로운 모습의 중고생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흡사 군대를 연상케 하는 훈련된 일군의 화염병 부대의 정체는 모호했다. 경찰은 4월28일 집회 때도 등장했던 이들 때문에 그토록 많은 무장경찰이 있었으며, 최루탄이 투입되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화염병이 최루탄을 부른 것인지, 최루탄이 화염병을 재촉한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복종을 거부하라!”, “경쟁과 소비는 우리를 소멸시킨다.”, “증오를 보낸 자, 분노를 거둘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우리 소유다. 너희들이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3월 초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전역에 저항이 고조되어 온 ‘노동법 개정’을 직접 겨냥하는 슬로건보다, 그 법을 준비하는 지배계급, 그들이 이끄는 세상의 논리를 저격하는 구호들이 거리를 덮었다.

2월 중순,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이 노동법 개정 소식이 <르파리지앵>의 특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모든 언론은 한 입으로 “그 어떤 우파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사회당 정부가 했다”고 말했다. 우파들은 사회당 정부의 파격적인 친기업적 노동법을 칭찬하는 말이었고, 좌파들은 경악의 일성을 내질렀다. 프랑스인의 3분의 2는 이 사안이 현 정권을 향한 거센 저항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과연 그러했다. 3월9일 첫 시위 때 100여개의 고등학교가 파업에 동참했다. 그들의 참여는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업과 손잡고 ‘노동자, 시민들을 밟으려는 법안을 감히’ 만든 사회당 정부에 분노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목소리는 메이데이 행렬이 지나는 거리 벽에, 사람들의 이마에, 등에 새겨져 있었다.

밤 10시30분. 3월 말부터 ‘밤샘 시위’(Nuit Debout)의 성지, 새로운 저항의 메카가 된 파리 공화국광장(레퓌블리크 광장)은 전쟁터로 돌변했다. 전날까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시민들의 합창이 가득 채우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장엔 밤 11시가 넘도록 돌과 최루탄을 주고받는 증오가 팽배했다.

11월 파리 테러 이후 시작된 국가 비상사태는 도심에서 무장경찰을 마주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들의 공권력 남용은 셀 수 없이 늘어가고 있다. 자유·평등·박애의 휘장을 두르고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마리안상은 폭력과 증오가 투석전을 벌이는 광장을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공화국광장에서 진행되어 온 밤샘 시위의 슬로건은 진화했다. ‘밤’(nuit)과 ‘일어서다’(debout) 사이에 “다시는 무릎 꿇는 일이 없도록”이 들어가 있다. 단호히 복종을 거부하는 시민들 앞에서 재선을 위해 기어이 당신들을 밟고 가겠다는 지도자. 행진하던 시민이 외친 구호처럼, “국가 비상사태는 어쩌면 너희들”(사회당 정부)인지 모르겠다.

파리/글·사진 목수정(재불 작가)

◇관련기사
▶프랑스 노동법 개정안 어떤 내용 담았나
▶‘경제침체가 노동시장 탓인가’ 좌도 우도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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