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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기업 “해고는 쉽게, 노동시간은 길게” 노동자 “많이 일하고, 적게 받으라니”

등록 2016-05-03 19:49수정 2016-05-03 21:14

프랑스 노동법 개정안 무엇을 담았나?

주 35시간 노동→최대 46시간 연장
기업 ‘경제적 이유’ 해고 권한 넓혀
성인 70%가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
노동계, 부자증세·고용확대 요구
프랑스 정부가 추진중인 노동법 개정안을 한마디로 하면 “해고는 쉽게, 노동시간은 길게”다. 물론 이것은 기업 입장에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많이 일하고 적게 번다”가 된다. 노동계가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개정안 내용 중 먼저 근로시간을 보면, 지난 2000년에 도입되었던 주 35시간 노동제도가 실질적으로 무너졌다. 개정안은 1주일 노동시간을 최대 46시간까지 각 기업 단위에서 노사합의로 정하도록 했다. 만일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엔 여전히 주 35시간제가 적용되므로 노동시간 연장이 강제 규정이 아니라는 게 정부 쪽의 주장이다.

초과 근무를 포함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현행 48시간에서 60시간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노사 합의로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초과근무 수당은 줄어들게 된다. 현행 노동법은 초과근무 수당의 할증률을 최소 25%로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이를 최소 10% 이상으로 크게 낮췄다.

개정안은 또 기업의 해고 요건과 절차를 더 간편하게 했다. 현재 프랑스에선 기업이 합법적인 해고를 하기 위해선 고용주가 ‘경제적인 이유’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고 이를 증명해야 한다. 지금도 기업의 해고 사유로 수개월간 지속된 매출의 저하, 테크놀로지의 격변, 심각한 재정손실 등의 조건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개정법에선 그런 사유를 인정할 요건이 대폭 완화돼, 고용주가 ‘경제적 이유’에 따른 해고를 할 수 있는 길을 더 넓혀주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최근 보도에서 사회적 권리 전문 변호사를 인용해 “이번 노동법 개정안은 해고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업의 노동자 해고 요건인 ‘경제적 어려움’에 주문량 감소 또는 적자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기존에는 기업의 일부 경영상 수치의 저하만으로는 해고를 정당화할 수 없었으며 법원의 엄격한 판단을 거쳐야 했다는 것이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노조의 협상력도 약화된다. 지금은 노조가 조합원의 30% 이상을 대변하면 노사협상 결과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그 수치를 50%까지 올려 놓고 있다. 그 이하를 대변하는 노조와의 협약이 진행되면 기업은 전체 노동자 투표를 실시할 수 있으며, 노조는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프랑스 노동계는 이런 규정이 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이자 법이 정한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조항을 기업별 투표로 무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3월 현지 일간 <르파리지앵>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응답자의 70%가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꼭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꿈꾸고 있지만,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강력한 장애물을 만났다. 올랑드는 10%를 넘나드는 실업률을 한자리수로 낮추지 못하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노동법 개정안에 사실상 정치생명을 건 셈이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쉬운 해고가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전혀 틀린 건 아니다. 독일에선 노동유연화를 극대화한 법 개정이 있고 나서 실업률이 급속히 떨어졌다. 올해 초 독일의 실업률은 불과 4.2%로 유럽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는 독일에서 시간제 고용이 급증하고 전체 임금 수준이 떨어지는 등 고용의 질은 되레 나빠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노동계는 긴축 대신 부자 증세와 공공부문 고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체 고용인구 가운데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26.3%에 이른다.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의료, 교육분야에서만 수만 명의 고용이 줄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나선 올랑드 현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의 최소 70%와 노조, 사회당 내 좌파 진영 뿐 아니라, 일부 우파에서도 노동법 개정안을 재앙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법의 내용에 대한 미숙한 전달 방식도 반대파들에게 강한 저항의 빌미를 주었다.

프랑스 하원은 3일부터 이 법안의 심의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구 의원이 이 법안에 표를 던지지 못하도록 직접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파리/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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