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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브렉시트 향방, 유럽통합을 시험대에 올리다

등록 2016-05-29 20:07수정 2016-05-29 20:56

국제 초점 I ‘브렉시트’ 국민투표 내달 23일

탈퇴파
“EU 규제·분담금 부담 커
이민자 유입 차단벽 둬야”
‘고립’ 추구 유럽회의주의도 작용

잔류파
“탈퇴 땐 되레 경제손실 크고
이민자 유입도 막지 못해
영국을 어둠 속으로 끌고갈 것”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폴레옹, 히틀러는 모두 유럽 통합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유럽연합(EU)은 이들의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15일 영국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통합을 추구하는 유럽연합의 시도를 히틀러에 빗댔다. 유럽에서 금기에 가까운 히틀러 비유 발언의 파장은 컸다.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은 “매우 모욕적이고 극단적이며, 도덕적 잣대를 잃었다”고 쏘아붙였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존슨 전 시장은 합리적인 담론의 선을 넘는 정치적 기억상실 증세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오는 6월23일 영국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은 양분돼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포함한 주류 정치인들은 “브렉시트는 영국을 어둠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라며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한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 결과도 혼전이다.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엄’이 지난 16일 2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연합 잔류’ 응답이 44%로, ‘탈퇴’(40%) 응답을 약간 앞섰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16%에 달해, 누구도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 브렉시트 투표, 왜?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0일 런던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하는 ‘잔류에 투표를’(Vote Remain) 지지자들과 함께 브렉시트 반대를 호소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운데)가 지난 10일 런던에서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하는 ‘잔류에 투표를’(Vote Remain) 지지자들과 함께 브렉시트 반대를 호소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지난 2월19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막기 위한 유럽연합 개혁안이 이틀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유럽연합 가입국들은 영국으로 오는 이주민들에 대한 복지 제공을 유예하고, 유럽연합 규약의 ‘더 끈끈한 결속’ 조항에서 영국은 예외로 명시하는 등 영국의 요구안을 대부분 받아줬다. 여기에는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프랑스와 독일의 노력이 있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저지 개혁안’으로도 불린 이 방안이 통과된 뒤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에 남도록 온 힘을 다해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반이민 정서를 기반으로 성장한 극우 정당 ‘영국독립당’(UKIP)을 통해 힘을 얻었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지나친 규제와 분담금 부담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국경 통제권을 확보해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잔류에 대한 회의가 커지자 2013년 1월, 캐머런 총리는 “영국 정치에서 유럽연합과 관련된 질문들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며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2017년 안에 브렉시트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전체 의석 650석의 과반인 331석을 얻었고,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도 현실화됐다.

■ 뿌리깊은 유럽회의주의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탈퇴를 주장하는 ‘탈퇴에 투표를’(Vote Leave) 지지자들이 4월15일 맨체스터에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의 연설을 듣고 있다.  맨체스터/EPA 연합뉴스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탈퇴를 주장하는 ‘탈퇴에 투표를’(Vote Leave) 지지자들이 4월15일 맨체스터에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의 연설을 듣고 있다. 맨체스터/EPA 연합뉴스
“내 돈을 돌려받길 원한다.” 1979년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한 마거릿 대처는 이듬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열린 ‘유럽공동체’(EC) 정상회의에서 분담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 당시 9개국이 가입해 있던 유럽공동체에서 영국은 두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냈는데, 대부분은 유럽의 공동 농업정책에 쓰이고 있었다. 농업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국은 자신들이 낸 분담금에 견줘 돌려받는 것이 없다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고, ‘경제 회생’을 내걸었던 대처 총리는 끈질기게 이 불만을 제기했다. 결국 1984년 유럽이사회는 영국이 내는 분담금의 약 3분의 2 정도를 되돌려주기로 합의했다. 2013년 대처가 숨졌을 때 캐머런 총리는 “영국은 브뤼셀(유럽연합)에서 협상할 때, 지금까지도 대처 총리가 얻어냈던 환급금을 방어하고 있다”며 유럽연합과 맞선 대처의 공로를 기렸을 정도였다.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브렉시트 논란의 이면에는 유럽대륙으로부터 ‘영광스러운 고립’을 추구해왔던 영국의 뿌리 깊은 ‘유럽회의주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1952년)가 만들어진 지 20여년 뒤인 1973년에야 유럽공동체에 가입했다. 당시 영국의 무역은 영연방이나 북유럽, 미국에 집중돼 있었으며 유럽공동체 가입이 큰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경제를 넘어 정치 통합까지 추구하는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성격’은 국민국가로서 영국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은 유럽연합을 ‘공동체로서의 정체성’보다는 ‘비용과 이익’이라는 경제 관계로 인식해왔다”고 했다.

■ 누구의 주장이 설득력 있나

유럽연합 잔류와 탈퇴를 주장하는 각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목도 경제 분야다. 런던정경대학 경제효율센터(CEP)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경제적 손실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3~9.5%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는 2008~9년 금융위기 당시 영국의 손실 규모와 맞먹는 규모다. 반대의 주장도 있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오픈유럽’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더라도 이후에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이 1.6% 정도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민자 문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독립당은 국경 통제 권한을 다시 확보해 이민자의 유입을 효과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잔류를 주장하는 쪽은 이민자들의 노동력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맞선다. 이들은 “2014년 영국에 들어온 이민자 62만4천여명 중 29만2천여명은 유럽연합 이외의 국가 출신의 이민자”라며, 유럽연합 탈퇴가 이민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경제학자인 로저 부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의 영향력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찬성, 반대 쪽 모두 수치로 논쟁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다면, 영국은 2009년 발효된 ‘리스본조약 제50조’에 따라 2년 안에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 영국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노르웨이·아이슬란드처럼 무역 장벽과 관세 부담을 덜 수 있는 ‘유럽경제지역’(EEA)에 가입할 수도 있고, 터키처럼 유럽연합과 관세동맹 협정을 맺는 방법도 있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방안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순순히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는 지적이 있다. 레셰크 발체로비치 전 폴란드 부총리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영국을 따라 탈퇴하려는 다른 국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라도 브렉시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통합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의 주장처럼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는 통합으로 갈 때 겪는 또 한차례의 성장통일까.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유럽이 키워온 정치·경제 공동체의 꿈이 시험대에 올랐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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