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이탈리아 아콰산타 테르메의 광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랑 라몬 아다지와 신부 마르티나 아다지의 모습.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화동은 바닥에 깔린 하얀 천 위에 꽃잎을 뿌렸고, 그 위를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걸었다. 하객들은 음악에 맞춰 입장하는 신랑 신부를 향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다. 결혼식을 찾아준 손님들을 위한 쿠키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결혼식이었다. 신랑 신부를 둘러싼 배경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지난 24일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던 이탈리아 아콰산타 테르메 지역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탈리아 부부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 등이 28일(현지시각) 전했다.
신랑 라몬 아다지와 신부 마르티나 아다지는 원래 자신들의 고향인 테르메의 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치르기 나흘 전인 지난 24일 새벽, 테르메 지역을 비롯해 이탈리아 중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던 성당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혹시나 결혼식을 올리지 못할까 초조해하던 마르티나에게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리자고 제안한 건 남편인 라몬이었다. “지진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는 라몬은 “내가 먼저 아내에게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라몬은 이어 “나는 여전히 이 도시를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왜 다른 곳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마르티나 역시 라몬의 생각에 동의했다고 한다. 마르티나는 “물론 걱정되고 긴장되기도 했다”면서도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했고, 우리는 서로를 환영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28일 테르메의 마을 광장에서 열린 이들의 결혼식에는 수십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해 결혼을 축하했다. <시엔엔>은 “이들의 결혼은 지진의 한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순간이자, 여전히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새벽 이탈리아 중부를 강타한 규모 6.2의 지진으로 지금까지 최소 29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들의 결혼식보다 하루 전인 27일에는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주 아스콜리피체노에서 강진이 발생한 뒤 첫 장례식이 열렸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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