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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선두 급락·신예 돌풍…프랑스 대선 ‘태풍권’ 진입

등록 2017-02-02 20:29수정 2017-02-03 08:39

주요 정당 등 후보 10명 출사표 내
급진좌파~극우까지 정치성향 다양
두달여 앞두고 이변 속출 안갯속

선두권 피용 ‘부인 스캔들’에 휘청
1위 극우 르펜도 측근 부정에 곤혹
30대 마크롱은 반사이익 다크호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오는 4~5월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정국이 짙은 안갯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집권 사회당이 주요 정당 중 마지막으로 후보를 확정하면서 대선 경쟁은 본궤도에 올랐다. 프랑수아 피용(62·공화당), 마린 르펜(48·국민전선), 에마뉘엘 마크롱(39·전진), 브누아 아몽(49·사회당)을 비롯해 모두 10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4월23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 당선자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1·2위 후보가 다시 겨루는 5월7일 결선투표 진출 티켓 2장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유럽 각국도 프랑스 대선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의 양대 축인 프랑스의 대선 결과에 따라 유럽연합의 향방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경제, 난민, 안보, 유럽통합 등 첨예한 현안들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깜짝 이변과 돌발 변수도 속출하고 있다. 사회당 후보 경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고, 사회당 선두주자였던 마뉘엘 발스 전 총리가 탈락했으며, 공화당 경선에선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참패한 뒤 정계를 은퇴한 건 예고편일 뿐이다.

이번 대선은 급진좌파(아몽)에서부터 진보적 자유주의(마크롱), 보수 우파(피용), 극우 민족주의(르펜)에 이르기까지 후보들의 정치 성향도 다양하다. 유권자 표심도 어지럽게 갈리면서 어느 후보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중도좌파 사회당 정부의 우편향과 무기력함에 대한 실망이 깊지만, 잇따른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 공포와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감도 공존한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EU)의 균열이 깊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은 위기의식을 더한다. 집권 사회당 장관직을 던지고 나와 처음으로 선출직 공직으로 대선에 출마한 30대 기수 마크롱 후보의 돌풍도 심상치 않다.

최근 가장 극적인 돌발 사태는 줄곧 선두 다툼을 벌이던 피용 공화당 후보의 급락 위기다. 지난달 25일 주간 <카나르 앙셰네>는 “피용 후보의 부인 페넬로프가 과거 남편의 하원의원 시절에 보좌관으로 채용돼 매달 수천유로의 세비를 지급받았으나, 실제론 어떤 일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폭로했다. 페넬로프는 피용이 하원의원이던 1998~2002년에는 남편의 보좌관으로, 피용이 장관이 된 뒤에는 후임자의 보좌관으로 이름만 걸어 놓고 수령한 세비의 합계가 50만유로(6억2000만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피용은 보도가 나온 다음날 <테에프1>(TF1) 방송에서 “아내의 보좌관 채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이 문제로 기소되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카나르 앙셰네>가 피용의 두 아들도 피용이 상원의원일 때 위장 채용돼 8만4000유로(약 1억원)를 받았다는 후속보도를 내면서 피용은 결정타를 맞았다. 검찰은 피용 부부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하고, 추가 폭로가 나온 31일에는 의회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피용은 자신의 비리 의혹을 “사회당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도부도 1일 긴급회의를 열어 피용을 지지하기로 하고 (피용 낙마에 따른) ‘플랜 B’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24> 방송은 “피용이 내세운 청렴결백, 강한 직업윤리, 무상복지 반대라는 3대 축이 ‘페넬로프 게이트’로 한방에 날아가버렸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오른쪽)이 부인 페넬로프(왼쪽)의 보좌관 급여 부당 수취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달 29일 파리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오른쪽)이 부인 페넬로프(왼쪽)의 보좌관 급여 부당 수취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달 29일 파리에서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집권 사회당에선 ‘가장 왼쪽에 선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비주류 정치인 브누아 아몽 전 경제부 장관이 올랑드 정부의 실세였던 마뉘엘 발스 전 총리를 꺾고 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 세수 확보를 위한 산업용 로봇 과세, 대마 합법화, 차별 철폐 국가감독관제 신설 같은 파격적 공약을 제시하며 신선한 좌파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일간 <르 피가로>는 최근 사회당 내부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동료 의원인 아몽 대신 신생 정당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롱은 한때 사회당원이었으며,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현 정부의 경제부 장관이었다. 아몽은 이번 대선에서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의 단결을 호소하고 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이민 민족주의 정서에 기댄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인 마린 르펜 역시 지난해 4월 대선 후보군 지지율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이래 만만치 않은 저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르펜도 최근 유럽의회 급여 유용 혐의로 논란에 휩싸였다. 유럽의회 의원이면서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르펜은 자신의 친구를 보좌관으로 채용하고 유럽의회로부터 급여 지원금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유럽의회는 르펜이 급여 지원 조건을 어기고 지원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2010~2016년 지원금 29만8500유로(약 3억7000만원)를 지난달 31일까지 반환하라는 1차 서한을 통보했다고 <프랑스24> 방송이 보도했다. 또 경호원 급여 지원금 4만1550유로도 2월말까지 반환하라는 2차 청구가 이어졌다. 당사자들이 유럽의회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또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근무해야 하는 조건을 어겼고, 파리에서도 유럽의회와 상관없는 일만 했다는 것이다. 르펜은 반환을 거부한 채 31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피용의 비리를 빗대어 “내 이름은 피용이 아니다”라며 “이런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결정에 공식적으로 맞서겠다”고 맞받았다.

경쟁자들의 악재가 잇따르면서, 마크롱은 반사이익으로 더욱 탄력을 얻고 있다. 지난달 27일 여론조사기관 ‘칸타 소프레스’가 발표한 지지율 조사 결과를 보면, 마크롱이 결선에 진출할 경우 누구와 맞붙어도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로선 대권에 가장 근접한 후보인 셈이다. 마크롱은 대형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의 은행가였다가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2014년 경제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재직 중에는 노동시간 연장, 친기업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노동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때 당원이었다가 탈당한 사회당에 끝내 가입하지 않은 ‘소신’도 이채롭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카니발 축제를 앞두고 한 작가가 축제에 사용할 프랑스 대선후보들의 조형물에 막바지 붓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린 르펜, 프랑수아 피용,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다. 니스/AFP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카니발 축제를 앞두고 한 작가가 축제에 사용할 프랑스 대선후보들의 조형물에 막바지 붓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린 르펜, 프랑수아 피용,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다. 니스/AFP 연합뉴스
마크롱은 장관 재직 중이던 지난해 4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자유주의 성향의 정당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당한 데 이어, 8월에는 장관직을 사임하고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부와 사회당 일각에선 이런 행보가 정치 신의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나왔고, 지금까지 한 차례도 선출직 공직을 맡아본 경력이 없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최근 <로이터> 통신은 마크롱이 고전적인 좌우 분열을 넘어서는 의제들을 제시하며 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선 직후인 6월 총선에 자당 소속으로 출마할 후보자를 온라인으로 모집하고 있는 것도 신세대 정치인다운 면모다.

프랑스 정치분석가 토마 게놀레는 최근 <프랑스24> 방송에 “마크롱의 약진은 40여년 전 (대선 결선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를 꺾고 당선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을 연상시킨다”며 “1974년 대선 이후 지금처럼 흥미진진한 대선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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