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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마크롱 싫어, 르펜은 더 싫어” 76%만 “투표하겠다”

등록 2017-05-04 17:13수정 2017-05-05 06:22

[이예나 PD의 프랑스 대선 르포]

결선 D-3, 좌파는 중도 마크롱 지지-기권 갈려
급진좌파 멜랑숑 지지층 ‘극우 집권 저지’ 소극적
정치학도 “마크롱은 내 생각 대표하지 않아”
건축가 “국민전선 뿌리는 파시즘…저지해야”

기성 정당 몰락 속 투표율이 큰 변수 떠올라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3일 프랑스 파리의 한 술집에서 에마뉘엘 마크롱(텔레비전 화면 오른쪽) 후보의 지지자들이 그와 함께 결선에 진출한 마린 르펜과의 텔레비전 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3일 프랑스 파리의 한 술집에서 에마뉘엘 마크롱(텔레비전 화면 오른쪽) 후보의 지지자들이 그와 함께 결선에 진출한 마린 르펜과의 텔레비전 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노동절인 지난 1일 파리 거리에는 3만~8만명의 시민들이 나와 극우 국민전선에 분노하는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노조들은 노동절마다 전통적으로 함께 해온 행진을 이번에는 함께 하지 않았다. 이견을 좁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전선에 반대하지만, 일부 노조는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가 친 기업적 후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노조들은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에 반대해 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파인 마크롱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이전의 시위에선 마크롱 지지자와 ‘르펜도 마크롱도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 파리 북동부의 공화국광장(레퓌블리크광장)부터 국가광장(플라스드나시옹)까지 함께 걸었다. 하지만 좌파들의 전통인 노동절 행진이 다른 두 장소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7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좌파 내부에서 논쟁이 계속 뜨겁다. 1차투표에서 19.58%를 득표한 급진 좌파 후보 장 뤼크 멜랑숑은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다. 국민전선에 맞서 투표해온 프랑스 좌파의 전통을 깨는 것이다. 그는 지지자들이 중도파 마크롱에게 투표할지 기권할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반면 멜랑숑을 지지했던 피에르 로랑 공산당 대표는 대선 결선투표에선 중도파 마크롱에 투표하고 6월 총선에선 계속 좌파의 투쟁을 이어가자고 했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극우에 반대해 단결해온 역사가 있다. 대선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제도에도 극단주의 집권을 막으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선두주자인 마크롱은 전직 로스차일드 은행가이며 올랑드 사회주의 정부의 경제장관이었다. 그는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극우 국민전선의 후보 마린 르펜은 반 이민, 반 유럽연합을 주장하며 1차 투표에서 2위로 결선에 올랐다. 마크롱은 유럽연합과 재계에 친화적이며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마린 르펜은 국내 경제 중심의 프랑스를 되돌리고, 합법 이민을 중단시키고,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자 한다.

최근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Cevipof)와 입소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최신 여론조사를 보면 마크롱의 지지율은 59%로 르펜을 앞선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76%만이 반드시 투표장에 갈 것이라고 답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에서 대선 투표에 기권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올해 모든 시선은 투표율에 쏠리고 있다. 마크롱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많은 좌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레아는 1차 투표 때는 몇시간이나 줄을 서서 투표를 했다. 그는 여러 좌파 후보들 중 누구를 찍을지 고민하다 결국은 사회당 후보인 브누아 아몽에게 1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결선에선 투표하러 가지 않을 것”이라며 “투표는 신념에 따라 해야 하는데, 마크롱은 내 생각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인 그는 자신이 기권하기로 한 것은 어쨌든 마크롱이 당선은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내가 약간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더러운 일(르펜을 막기 위해 지지하지 않는 마크롱에 투표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대신 해줄거라고 여기니까.”

해리스 인터렉티브의 여론조사를 보면 1차 투표에서 급진 좌파 멜랑숑에 투표했던 이들 가운데 13%는 르펜에게 투표할 것이고, 42%는 기권 또는 무효표를 던지겠다고 한다. 공화당의 피용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28%는 르펜에게 투표할 것이고, 30%는 아예 기권할 것이라고 했다. 대체로 이들 후보의 지지자들 가운데 절반 미만이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에게 투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래프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마크롱은 자신의 지지자들 외에 다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마린 르펜은 유로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고,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뒤퐁 애냥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히고, 새로운 홍보물을 만들어 급진 자파 유권자들에까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파리의 젊은 회계사인 올리비에는 “마린 르펜은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녀가 더 잘 통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일요일 결선투표에도 참여할 생각이다. 그에게 “르펜이 당선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 과세를 한다면, 그의 동료인 우사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와 같이 일하는 것은 정말 좋다. 그는 다른 북아프리카 출신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예외적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의 실업률은 너무 높고 상황은 복잡하다”란 답이 돌아왔다.

살바토레는 파리 외곽 순환도로 바로 남쪽에서 작은 신발 수리점을 운영한다. 그는 이민자에 대한 생각을 훨씬 거침 없이 표현했다. “지금은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민자들은 우리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고 오고 있다.” 이탈리아 이민 2세인 그는 자신과 알제리계 후손인 여자친구도 이 점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린 르펜이 파리 근처의 성에서 자랐다는 과거는 마크롱이 잠시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일했다는 경력에 비해 덜 비난을 받는다. 살바토레는 “마크롱은 중산층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소상공인이고,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크롱은 대기업가들 대신 주택 소유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릴 것이다. 마린 르펜은 우릴 보호해줄 것이다.”

살바토레는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고객들과 매우 허물없이 지내는 듯 보인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와 인사를 나누려고 가게에 들어왔다. 하지만 좌파 강세인 이 지역에서 9.5%의 주민만이 르펜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 견해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르펜과 그가 내세우는 공약이 모두 좋다”고 그는 말했다.

장루이는 자신이 지은 3층 집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건축가다. 그는 자신이 사회당이나 녹색당 후보에 투표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사회당 후보가 이렇게 낮은 지지를 받은 것이 나로선 놀랍지 않다. 그들은 사람들과 교감을 잃었다.”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은 1차 투표에서 겨우 6.4%를 득표해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는 좌로는 자신과 많은 정책이 겹치는, 하지만 훨씬 더 카리스마 넘치는 멜랑숑에 밀렸고, 우로는 사회당 내 간부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사회당 표를 많이 잠식한 마크롱에 밀렸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장루이는 1차 투표에서 마크롱에게 한 표를 던졌다. 마크롱이 프랑스 사회에 대한 현대적 비전을 가지고 있고 젊은 패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크롱의 문화, 환경 정책 부족에는 실망했지만, 마린 르펜이 집권할 가능성에는 반대한다. “국민전선에 투표할 수는 없다, 국민전선의 뿌리가 파시즘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1차 투표 2주 전 마린 르펜은 인터뷰에서 “프랑스는 벨디브 사건(1942년 나치 치하의 프랑스 경찰이 1만3000여명의 유대인을 붙잡아 강제 수용소로 보낸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이자 국민전선 설립자인 장 마리는 히틀러의 가스실은 역사의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4일 파리 시내에 붙은 프랑스 대선 결선 후보 마린 르펜(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의 선거 벽보가 모두 훼손돼 있다. 파리/이예나 PD
4일 파리 시내에 붙은 프랑스 대선 결선 후보 마린 르펜(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의 선거 벽보가 모두 훼손돼 있다. 파리/이예나 PD
극우 국민전선 출신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이번처럼 높은 적은 없었다. 국민전선 후보는 2002년에 딱 한번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한 적이 있다. 당시 기권율이 28%나 되는 상황에서 장 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해 자끄 시라크와 맞붙었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결선에서 시라크는 82%의 득표로 압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크롱이 승리한다 해도 격차가 훨씬 적을 것이다.

이예나 <프랑스24> 프로듀서
이예나 <프랑스24> 프로듀서
선거 때마다 국민전선은 프랑스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이용해 지지율을 계속 높여왔다. 39살의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프랑스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국민전선이 다음번 선거에서 더욱 기치를 올리려는 상황에서 우리는 폭풍 전야의 고요 속에 있는지 모른다.

파리/이예나 <프랑스24>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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