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7일 밤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7일 프랑스 대선 결선에서 이긴 정치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의 승리 요인을 분석하는 데 빠짐없이 들어가는 단어는 ‘행운’이다. 집권 사회당은 친기업적 노동 개혁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 속에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해 지지를 잃었고, 유력 후보였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 스캔들로 어이없이 무너졌다. 거대 양당이 힘을 못 쓰는 가운데 구체제 청산을 지향하는 사조 ‘데가지슴’(degagisme)이 선거의 화두가 되면서 신인 마크롱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번 대선의 최대 특징은 기성 정당의 몰락이다. 집권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이 1차 투표에서 6% 득표에 그쳤고, 20% 전후를 득표한 상위 4명 중 3명이 소수정당 후보였다. 이 가운데 급진 좌파 장뤼크 멜랑숑이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자며 ‘데가지슴’이란 구호를 들고나왔다. 이 말은 2011년 ‘아랍의 봄’ 때 창안됐고 벨기에 좌파가 의미를 부여한 신조어다. 마침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5성운동 등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도 새로운 풀뿌리 정치 운동이 성장한 터다. 데가지슴은 멜랑숑뿐 아니라 마크롱, 극우 마린 르펜 등 소수정당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주목하게 만들었다.
‘대리전’ 양상을 보인 선거에서 마크롱의 승리는 역설적으로 그의 상대인 르펜 덕이기도 하다. 전직 투자은행가인 마크롱은 특별한 이념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세계는 그에게 주목했고, 그의 자유주의적 사고에 관대했다. 그가 ‘이겨야 할’ 상대가 반이민, 반세계화, 반유럽연합을 내세우는 극우 포퓰리스트 르펜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뒤 전세계에서 확산되는 우파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잘 조직된 국민전선(FN)이 약진하면서, 이번 대선은 극우파에 대항하는 일종의 세계적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급진 좌파인 멜랑숑을 제외한 공화당의 피용, 사회당의 아몽 등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들이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과 정치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르펜이 국경 문제에 가장 강경하다”며 르펜에게 호의적 발언을 한 바 있다.
마크롱이 이변과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이 됐지만, 자신이 구상하는 정치를 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우선 르펜을 지지한 국민 3분의 1을 추스르며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르펜은 2002년 그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득표율의 두 배 가까운 표를 얻었다. 마크롱을 지지한 66%의 대부분을 ‘열성 지지자’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마크롱은 지난달 1차 투표에서 24%만을 득표했을 뿐이다. 극우 당선을 막기 위한 울며 겨자 먹기식 투표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48년 만의 최고 기권율(25.44%·약 1210만명)과 400만표에 달하는 무효표도 ‘압승’을 무색하게 만든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은행원 대 파시스트’의 선거라며 비아냥거렸다. 멜랑숑 지지자들의 65%는 결선에서 마크롱에게 투표하느니 기권하거나 무효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마크롱이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으로서 노동 시간을 늘리고 해고를 더 쉽게 하는 정책을 추진해 노동자들의 분노를 산 탓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마크롱은 기업 환경은 더 유연하게 하면서 사회보장은 튼튼하게 하겠다고 좌우 양쪽을 모두 향해 공약했다. 마크롱은 전직 투자은행가인 동시에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다. 이 양면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그의 정치 드라마를 정의할 것”이라고 짚었다.
마크롱이 이끄는 앙마르슈(전진)가 지난해 창당한 신생 정당으로 현재 의석이 한 석도 없다는 점도 난제다. 프랑스 정치학자 파스칼 페리노는 <가디언>에 “과반 의석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 이건 죽은 선거다. 마크롱과 르펜 모두 의회정치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마추어”라고 밝혔다. 현재 프랑스 의회(하원)는 기존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6월 총선 이후 기존 정당과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마크롱의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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