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부국 은퇴자들의 이주지로 인기가 많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태양의 해변’(코스타 델 솔) 주변의 한 마을.
영국의 은퇴 세대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기한이 마감되기 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프랑스 등지의 전통적 휴양 도시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발길을 서두르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현재 다른 유럽 국가들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권리 보호는 중요한 안건으로 포함될 예정이지만, 탈퇴 이후 상황을 예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13일 다른 유럽 국가로 이주를 문의한 은퇴자 수가 한 해 사이에 2배가량 늘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은퇴자의 재정 자문을 하는 업체 플레빈스 프랭크스는 지난 1년간 회사 누리집에 영국 외 유럽 휴양 도시로 이주를 문의한 건수가 직전 해 450건에서 900건으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주하는 이들 숫자도 20~25%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협상이 끝나면 유럽대륙 국가로 이주하는 것뿐 아니라 각종 혜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은퇴 이민’ 시기를 재촉하고 있다. 플레빈스 프랭크스의 제이슨 포터 경영개발부장은 “타국에서의 삶을 계획하는 은퇴자들은 주거, 건강보험, 연금이라는 3단 자물쇠를 떠올린다”며 “자금이 충분하다면 집을 사는 건 쉽겠지만, 다른 복지 혜택을 누리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재정을 관리하는 스펙트럼 아이에프에이(IFA)는 협상 종료 전 스페인으로 이주하기 위해 조기 은퇴를 결심한 고객도 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스페인에 거주하는 고객의 20% 이상이 아일랜드나 스페인 여권을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 내 자유로운 왕래를 약속한 솅겐조약이 ‘제3국’이 될 영국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국이 유럽 내 청년층 일자리를 확보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가 영국 은퇴자 세대를 받아들일 명분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카를로스 바르가스 실바 옥스퍼드대 이민자센터 정책·사회담당은 “영국과 각 국가가 이민자에 대한 양자 협정을 체결할 수 있겠지만 유럽연합이 이를 장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타국에서 은퇴 후 삶을 계획하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존 스프링포드 유럽개혁센터 연구소장은 “해안으로 향하는 영국 은퇴자들의 황금기는 이미 끝났다”고 표현했다. 젊은층 사이에선 높은 브렉시트 지지율을 보인 65살 이상 연령층이 해외 이주를 적극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기준 스페인에 사는 영국인은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65살 이상의 비율은 40%를 웃도는 12만1000명이다. 프랑스에 사는 영국인의 19%인 14만8800명이 은퇴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몰타와 사이프러스, 포르투갈에선 거주 영국인의 3분의 1이 65살 이상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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