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4일 연방하원선거를 마치고 베를린 당사에서 출구 조사 결과를 바라보고 있다. 베를린/신화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이 24일 치러진 독일 연방하원선거에서 득표율 33%로 1위를 기록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4연임 집권이란 역사를 쓰게 됐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승리다. 기민·기사연합의 득표율은 2013년 총선과 비교해 8.5%포인트나 떨어진 194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오히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진입에 성공하며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선거에서 이겼으나 메르켈 총리를 향하는 책임론이 만만찮다. 메르켈 총리는 선거 과정 중 경쟁자와 논쟁하기 보단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는 식으로 유세를 펼쳐 상대 주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에게 ‘수면제 정치’(sleeping-pill politics)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이런 전략이 반난민과 반유럽연합(EU) 기조의 ‘독일을 위한 대안’의 성장세를 방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5일 “콘라드 아데나워 전 총리나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같이 전후 민주화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지만, 그들처럼 마지막에 달할수록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집권 중 이번이 가장 어려운 활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켈의 기민·기사연합은 과반에 못 미치는 결과로 연정이 불가피하다. 사민당이 야당의 역할을 강조하며 연정 거부 의사를 밝힌 가운데, 기민·기사연합과 자민당, 녹색당 간의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세 정당의 상징색이 검정(기민·기사연합), 노랑(자민당), 초록(녹색당)으로 자메이카의 국기 색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까스로 입장이 정리돼 연정을 구성하게 되더라도 각 정당의 입장차가 커 향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만약 연정 협상에 실패할 경우 단독 내각이 출범해, 메르켈 총리가 재선거를 택할 가능성도 크다.
메르켈 총리 앞엔 산적한 과제와 갈림길이 잇따라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임기동안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과 원전 폐쇄, 부모수당 등 진보적 정책을 도입했고, 보수진영이 꺼리던 난민을 대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에 대해 당 차원의 선택 대신 자유 투표를 하도록 사실상 통과를 돕기도 했다.
예상대로 연정이 구성되면 진보 정책을 요구하는 녹색당과 보수 정책을 강하게 빌어붙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사연합·자민당의 힘겨루기가 펼쳐지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독일을 위한 대안’ 돌풍에 메르켈 내각 또한 다소 오른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난민 문제의 경우, 녹색당은 난민 유입에 우호적인 반면 기사연합과 자민당은 강경 반발하고 있다. 조세와 에너지 정책에서도 정당간 이해관계가 확연히 달라 한동안 이를 봉합하기 위해 고단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난민 문제는 외교적 사안이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에겐 유럽연합의 개혁과 경제 안정화 뿐만아니라 유럽연합국 난민 배당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또 터키와의 갈등, 자국우선주의를 들고 나온 미국과의 힘 겨루기도 메르켈 총리 앞에 놓인 난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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