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오른쪽)이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야체크 차푸토비치 폴란드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1953년 옛 소련이 종결시킨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2차대전 전후 배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 정부가 지난해부터 전후 배상이 타당하지 못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독일 정부가 조사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을 투입해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과 야체크 차푸토비치 폴란드 외무장관과 17일 베를린에서 만나 이런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가브리엘 장관은 “독일 정부는 배상 이유가 없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다. 이 문제는 합법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면서도, “양쪽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푸토비치 장관은 “우리는 해결책을 찾고 있다. (배상 문제) 토론은 전문가들의 기초 위에 실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폴란드 지도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공산주의 시대와 최근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며 “공론화시키기를 원한다. 너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으나 전문가 그룹 구성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읽힌다.
소련의 영향 아래에 있던 폴란드 정부는 1953년 8월 동독으로부터 배상 받을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련과 동독의 배상면제협정과 이어진 조처였다. 단 나치의 억압과 잔학 행위에 대한 배상은 예외로 했다. 이 세 나라는 소련이 폴란드의 동부 일부를 영토로 편입하는 대신 폴란드는 동독의 동부 지역을 일부 할양받는 것으로 전후 청산을 매듭지었다. 새로 구획된 동독과 폴란드의 국경선은 오데르-나이세선이라 불린다. 소련은 영토가 늘었지만, 폴란드는 동쪽 땅을 주고 서쪽 땅을 받았으므로 별로 실익이 없고, 독일은 영토가 축소된 것이다.
2015년 극우 성향인 법과정의당이 집권한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배상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1953년 결정은 소련의 강요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란드 의회는 위원회를 구성해 독일이 줘야 할 배상금 규모를 산정했는데, 폴란드 내각은 8100억유로(약 1057조608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독일 정부는 이를 부인하면서 “국제법에 따라 체결된 1953년 조약으로 배상 문제는 오래전에 끝났다”고 밝혀 왔다.
2차대전 중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에 분할 점령됐다. 유대인 300만명을 포함해 600만명이 1939~45년 나치 점령 하에 사망했고, 수도 바르샤바는 완전히 파괴됐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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