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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2 16:29 수정 : 2018.02.13 09:59

영국 옥스팜 누리집 화면.

2011년 아이티 대지진 구호때 성매매
4명 해임·3명 사직 뒤늦게 드러나
자체조사로 인사조처 ‘은폐 의혹’도

다른 구호단체·유엔평화유지군도
후원금 대가 현지서 성학대·착취
국제사회 대책마련도 효과없어

영국 옥스팜 누리집 화면.
2008년 5월 국제 구호개발 엔지오인 세이브 더 칠드런이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인도주의 단체 직원들과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코트디부아르(옛 아이보리코스트)·아이티·남수단에서 6살 소녀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폭행·성매매·아동포르노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이티의 한 15살 소녀는 “친구들과 걷다가 인도주의 (단체) 남자들을 만났는데 우리를 부르더니 성기를 보여줬다. 구강성교를 해주면 100아이티구르드(약 3000원)와 초콜릿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부했지만 몇몇 소녀는 해주고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 이 보고서 발표와 함께 국제적인 감시장치 마련을 촉구하자, 영국 인도주의 단체 옥스팜은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옥스팜 인도주의 책임자 제인 카킹은 당시 미국 <시엔엔>(CNN)에 “옥스팜은 우리 직원에 의한 성적인 비위에 대해 무관용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전세계에 있는 우리의 모든 직원은 강력한 행동규범에 의해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불과 3년이 지난 2011년, 영국 옥스팜 직원들이 아이티 대지진 구호 현장에서 성매매를 한 혐의로 4명은 해임되고 3명은 사직한 사실이 9일 영국 <더 타임스> 보도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당시 아이티는 2010년 강진으로 31만여명이 숨진 대참사를 겪은 뒤였다. 콜레라까지 덮쳐 아비규환인 그 곳에서 현장 소장 롤랜드 밴 하우버메런과 직원들은 구호활동을 위해 마련된 임시숙소에 현지 성매매 여성을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옥스팜은 이 사건을 자체 조사해 인사조처를 했으나 여러모로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수사당국에도 후원자들에게도 사건을 알리지 않았고, 하우버메런이 다른 구호단체에 재취업 할 때 신원조회 내용에도 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은폐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10일에는 2006년 차드에서도 옥스팜 직원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추가 보도가 나왔으며, 하우워메이렌은 당시 차드에서도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페니 모던트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11일 <비비시>(BBC) 방송에 나와 “옥스팜이 도움을 주려한 이들이나 그들을 그곳에 보낸 이들 모두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라며 국제개발부 지원금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12일 옥스팜 관계자들을 면담할 예정인데, 당시 내사 기록 전체 제출 등 “최고 수준의 도덕적 리더십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가디언>을 보면, 옥스팜은 지난해 국제개발부로부터 3400만파운드(약 510억원)를 지원받았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 개인 후원만으로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하기 어렵다.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은 터라 개인 후원 중단도 속출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캐럴라인 톰슨 회장은 “우리 단체에서 일어난 그와 같은 행동에 분노와 수치를 느낀다”며 “2011년 이래 큰 진전이 있었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옥스팜은 아이티 사건 이후 새로운 내부고발 절차와 강력한 검열 제도를 신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1년 아이티로 지진 구호활동을 떠난 직원들이 현지에서 성매매를 한 혐의로 해고되거나 사직한 것으로 최근 확인된 영국 옥스팜이 자사 누리집에 올린 성명서. 사진출처: 옥스팜 누리집 갈무리
옥스팜의 성추문은 다른 인도주의 단체로도 번질 태세다. <더 타임스>는 11일 영국의 주요 구호·자선단체 활동가 120명 이상이 성학대로 고발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보면, 옥스팜에선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1년간 87건의 성적인 비위가 보고됐다. 이 가운데 53건은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고 20명의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해고됐다. 영국 적십자에선 “적은 수의 성희롱”이 보고됐다. 크리스찬 에이드에선 국외에서 발생한 두 건의 성적인 비위 사건이 조사를 받았다. 이 중 한 건은 직원 해고로 이어졌고, 나머지 한 건은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더 그레일 트러스트에서는 인도에서 발생한 어린이 학대 의혹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비판받았다.

프리티 파텔 전 국제개발부 장관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일어난 성 학대 또는 아동학대 문제를 부인하는 문화가 구호단체들 사이에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개발부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내가 당시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유엔 보고서를 가지고 있는데, 300명이 연루된 120개의 사건이 있지만,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인도주의를 표방한 국제 기구와 단체의 성범죄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쉬쉬하던 행각이 제대로 폭로된 건 2002년이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2001년 유엔난민기구와 인도주의 단체들이 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등 난민 캠프에서 후원금과 구호물품을 주는 대가로 어린이와 성관계를 맺거나 성폭행·성추행 하는 등 성적인 학대와 착취가 이뤄진 사실을 밝혀낸 뒤 이듬해 발표해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에는 네팔 등 각국 유엔평화유지군이 콩고민주공화국과 브룬디에서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과자나 1~3달러로 소녀들을 유인해 성폭행하거나 성매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한 12살 소녀는 우유를 준대서 평화유지군 곁에 갔다가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고, 1달러에 입막음을 당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보다못한 국제사회는 2004년 11월 엔지오와 유엔 직원들의 성학대·성착취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더 안전한 기구 세우기 프로젝트’(BSO)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기구나 인도주의 단체가 나눠주는 구호물자와 현금이 현지인들한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데다, 피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도움의 손길이 중단될까 우려해 오히려 피해 지역에서 사건이 알려지는 걸 꺼리는 경향마저 보인다. 인도주의의 탈을 쓴 일부 포식자들의 파렴치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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