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0 17:10
수정 : 2018.02.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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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민주당 대표였던 마르틴 슐츠가 지난 13일 베를린 당사에서 자신의 사임 이후 임시 대표로 올라프 슐츠 현 함부르크 시장이 임명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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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당, 네덜란드 노동당 등 중도좌파 정당 줄줄이 위기
경제 불평등·이민자 유입, 사회 변화 앞에 속수무책 모습 모여
“전후 유럽 민주주의의 근간”이었으나 정치적 극단화에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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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민주당 대표였던 마르틴 슐츠가 지난 13일 베를린 당사에서 자신의 사임 이후 임시 대표로 올라프 슐츠 현 함부르크 시장이 임명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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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년 전통의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2013년 창당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에 지지율을 역전당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과 균형을 맞추며 유럽 정치의 주요 축을 형성했던 사민당의 참담한 추락에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빌트>는 여론조사기관 ‘인사’의 지지율 조사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이 16%로 사민당(15.5%)을 간발의 차로 앞섰다고 19일 보도했다. <폴리티코 유럽>은 사민당의 진로를 둘러싼 내분을 겪는 중에 나온 결과라면서 “지난주 마르틴 슐츠 대표가 직을 내려놓고 지도력에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민-기사연합은 지지율 32%로 지난주보다 2.5%포인트 상승했다. 녹색당은 13%, 좌파당은 11%, 자유민주당은 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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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도좌파의 몰락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더 급격히 진행된다는 점이 유럽 전역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가디언>은 지난해 유럽을 강타한 ‘중도좌파의 종말’을 분석하면서 “파속화(Pasokification)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표현했다. ‘파속화’는 그리스 중도좌파 정당 파속(PASOK)의 몰락을 기점으로 한 유럽 중도좌파의 추락을 뜻하는 신조어다. 파속은 2009년 43.9%를 득표해 여당 자리를 꿰찼으나, 국가 부도 사태의 후유증으로 2015년에는 6.3%를 얻는 데 그쳤다.
중도좌파의 위기는 전염성이 강했다. 2010년대 들어 독일 사민당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당, 네덜란드 노동당, 체코 사민당, 헝가리 사회당, 아일랜드 노동당, 폴란드 민주 좌파연합이 모두 고비를 맞았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브누아 아몽을 후보로 낸 프랑스 사회당의 득표율은 2012년보다 22.2%포인트나 떨어졌다. 네덜란드 노동당도 2012년 총선과 비교해 지난해 19.1%포인트나 떨어진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원인으로는 경제 불평등과 난민·이민 논란이 꼽힌다. 경제 위기가 가져온 무력감과 세계화로 인한 무한 경쟁이 인종주의 성향을 확산시키며, 중도좌파의 주된 지지층인 중산층과 노동자가 더는 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가디언>은 또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시장을 포용하는 ‘제3의 길’을 주창했으나 경제 위기와 함께 들이닥친 높은 실업률, 생활 수준 하락, 자동화 등 사회 변화 앞에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럽 중도좌파는 2차대전 후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꼽힌다. 그래서 좌·우 어느 쪽을 지지하더라도 “중도좌파의 위기는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미국 바너드대의 셰리 버만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독일 사민당이 최악의 득표율을 기록한 뒤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사민당은 오늘날에도 유럽대륙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 존재”라며 “자국이 직면한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포퓰리즘은 번성하고 민주주의는 쇠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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