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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8 17:27 수정 : 2018.03.18 21:52

지난 15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기회의 땅 포럼’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크레믈 누리집

18일 대선서 당선 기정사실…‘투표율 70·득표율 70’ 달성 관건
크림반도 병합 4주년 기념일에 대선, 전날 영국 외교관 추방도
국제무대 ‘초강대국 지위’ 회복으로 국내 사회·경제 문제 희석

지난 15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기회의 땅 포럼’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크레믈 누리집
블라디미르 푸틴(65) 대통령의 ‘임기 6년 연장과 총 24년 집권’을 보장해줄 러시아 대선이 18일 치러졌다. 캄차카 등 극동지역부터 발트해 칼리닌그라드까지 11개 표준시간대 1억900만명(인구 1억4200만명)의 유권자를 위해 현지시각 오전 8시~오후 8시에 투표가 진행됐다.

푸틴 대통령의 재선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푸틴의 정통성을 과시하려고 크렘린이 세운 목표치 ‘투표율 70%에 득표율 70%’를 달성할지가 관건이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투표 결과가 나오면, 국제 무대에서 옛 소련의 초강대국 지위 회복을 내걸고 민족주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국내 경제·사회 문제를 희석해왔던 ‘강한 푸틴’의 행보가 더욱 강화되리라 전망된다.

8명이 출마한 이번 대선 캠페인은 “서커스”(<비비시>)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무의미한 정치쇼에 가까웠다. 야권에서 그나마 푸틴의 대항마로 꼽혀온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살해됐고, 반부패 변호사 알렉세이 나발니는 유럽인권재판소도 인정하지 않은 부패 혐의로 일찌감치 출마를 금지당했다. 푸틴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후보들만 출마가 허용됐고, 몇몇은 출마 배후에 크렘린의 흥행 몰이 전략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WCIOM)이 지난 4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푸틴이 69.7%를 득표하고 공산당의 파벨 그루디닌(57)이 7.1%,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71)가 5.6%, 야블로코당 그리고리 야블린스키(65)와 여성 방송인 크세니야 솝차크(36)가 각각 1% 수준의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

러시아 대선일인 18일(현지시각) 모스크바의 투표소에서 군인들이 투표를 하려고 줄을 서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푸틴은 대선을 앞두고 몇 가지 상징적 조처를 통해 ‘푸틴 집권 4기’ 러시아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우선 선거법까지 고쳐가며 굳이 크림반도 병합 4주년 기념일인 3월18일을 선거일로 잡았다. 미국 등 서구와의 관계 악화, 그로 인한 고립이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를 관철하는 강력한 대외 정책을 구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2014년 친서방 성향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성향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크림반도 병합은 대외적으로 군사 요충지인 세바스토폴항에 있는 흑해함대를 지키고, 이곳을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막는 교두보로 삼는 효과를 노렸다. 대내적으로는 러시아를 포위한 서구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강한 지도자 푸틴’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푸틴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1일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푸틴>에서도 “(크림반도를 반환하는) 그런 상황들은 존재하지 않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못 박으며 러시아인들에게 자부심을 환기했다.

푸틴의 집권 3기 첫해인 2012년 1만5445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8748달러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고질적 부패 문제 역시 심각한데도 푸틴이 건재할 수 있는 건, 유력 야권 인사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등 위협 인물 처단, 산업 국유화, 미디어 장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가 소련 시절에 누린 초강대국 지위를 회복하고 있다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가 그를 떠받치는 한 축이다.

크림반도 병합 이외에도 시리아 사태 개입, 이란과 북한 제재 저지, 미국과 적대 관계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지원 등, 최근 국제사회의 주요 사안에서 러시아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소원한 동유럽의 헝가리를 지원하며 옛 동맹에 다가서고도 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진 중동에서 시리아와 이란을 기반으로 친러 벨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선 무기 기술을 바탕으로 리비아·이집트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군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7년 넘게 반군의 저항을 견디고 승기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사건으로 최근 미국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는 대선 직전 유럽 강대국 영국과 외교 전쟁을 시작했다. 영국은 지난 4일 자국 영토 안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부녀 독살 시도와 관련해, 14일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러시아는 맞불 조처로 대선 하루 전 모스크바 주재 영국대사관 직원 23명을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 1주일 안에 추방하기로 했다. 날 선 진실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푸틴의 대선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영리 독립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첸트르 자료를 보면, 소련 해체에 유감을 느끼는 러시아인은 1999년 66%에서 2017년 58%로 줄었으나 사반세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그 비율이 높다. 유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비율은 같은 기간 23%에서 26%로 3%포인트 늘었을 뿐이다. 미국을 적으로 본다는 러시아인은 같은 기간 22%에서 68%로 3배 이상 높아졌다. 푸틴의 강경 외교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지만, 러시아가 옳은 방향으로 간다고 보는 비율이 55%다. 잘못 가고 있다는 응답(28%)의 두 배에 이른다.

영국 정치컨설팅 그룹 테니오 인텔리전스의 오틸리아 드한트 선임 부소장은 미국 <시엔비시>(CNBC)에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호출하는 것은 푸틴의 다음 임기의 지정학적 목표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외교 정책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관계에 여전히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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