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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8 16:43 수정 : 2018.03.28 21:15

27일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모스크바 시민이 눈물을 쏟고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영 독살 시도 사건으로 28개국 러 외교관 150여명 추방
쇼핑몰 화재 참사 여론 악화로 “푸틴 없는 러시아” 시위도

27일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모스크바 시민이 눈물을 쏟고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지난주 러시아 대선에서 76.69%의 득표율로 4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일주일 만에 국내외적으로 녹록지 않은 암울한 현실과 마주했다.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부녀 독살 시도 사건의 여파로 서방과 냉전 이후 최대의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데다, 64명이 숨진 시베리아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에 분노한 러시아 시민들이 고질적 무능과 부패, 관영 언론의 침묵, 나아가 푸틴 대통령을 향해 분노의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푸틴 대통령이 케메로보 지역 당국자들에게 던진 이 질문이 지금 러시아 전역에서 울려퍼지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27일 전했다. 쇼핑몰 놀이시설과 영화관을 찾았던 희생자들 일부는 닫힌 출구에 매달려 부모에게 휴대전화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푸틴 대통령이 18년간 표방해온 ‘강하고 안전한 러시아’라는 허상이 무너져내리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27일 케메로보 거리에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여있다. 케메로보/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당국은 27일 저녁 모스크바 크렘린 인근에서 희생자 추모식을 열었다. 하지만 시민 수백명은 푸시킨광장에 따로 모여 촛불을 켜고 헌화했다. 이 슬픔은 곧 분노가 되어 “푸틴 없는 러시아!”, “부패를 없애자!”, “방송은 부끄러운 줄 알라!”, “침묵은 죽음이다!” 같은 정치적 구호가 지배하는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안전 규정 위반을 눈감아주기는 일이 많기로 악명 높다. 국제 소방구조협회 자료를 보면, 2001~2015년 러시아에선 10만명 중 7.5명이 화재로 숨졌다. 독일(0.5명), 프랑스(0.5명), 미국(1명)은 물론 카자흐스탄(2.7명)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로, 41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악이다.

27일까지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28개국에서 150명이 넘는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러시아에서는 통상 서방과의 갈등이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하는 국내 정치 선전용 도구로 활용된다. 이번엔 쇼핑몰 화재 희생자 숫자 발표를 믿지 않을 정도로 여론이 워낙 나빠 이런 ‘호재’마저 맥을 못 추고 있다. 26일 오전에는 자국 외교관 추방 소식에 집중한 관영 뉴스 채널 <로시야 24>조차 오후부터는 쇼핑몰 참사 뉴스로 거의 도배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유족과 부상자들을 위로하면서, 수사관 100명을 투입해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이 국가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것과 달리, 그는 태만에 의한 과실과 부주의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울러 반정부 단체가 소셜네트워크에서 혼탁한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며,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정보를 믿으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가 사고 당국자들을 만나고 있을 때조차 케메로보 중앙광장에서는 수천명이 당국의 사망자 수 은폐를 의심하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아내와 세 자녀, 여동생을 잃은 이고르 보스트리코프는 소셜미디어에 “나는 더 이상 가족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정부에서 나온 조사관은 희생양을 찾아 사건을 마무리짓겠지만, 무능과 광범위한 부패, 알코올 중독과 사회의 총체적 부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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