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9 11:50
수정 : 2018.03.2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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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콜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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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기 서독 외교문서 등 공개
콜은 미-소 핵무기 감축협정에 반대
오히려 서독에 신형 핵무기 배치 시도
겐셔 당시 외무장관 등 반대로 접어
‘슈피겔’ “콜의 계획대로 됐다면
소련이 독일 통일 수용 안 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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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콜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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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세상을 떠난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냉전 해체의 한 주역이면서 독일 통일을 완수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가 한때 소련과의 데탕트에 부정적이었으며, 오히려 신형 핵무기 배치로 대결 수위를 높이려 한 사실이 당시 외교문서 등을 통해 드러났다.
28일 <슈피겔>을 보면, 독일 정부는 냉전 해체기인 1987년 서독 외무부 고위층의 분석 자료, 대사관 보고서, 외무부와 총리실 대화록, 콜 전 총리의 서한 등을 최근 공개했다. 1987년은 2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등극해 개혁 정책을 시작한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핵군축 협상을 한창 진행할 때다. 그해 12월에 ‘냉전을 끝낸 조약’으로 불리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체결됐다.
외교문서 등에는 당시 콜 총리가 조약에 반대하거나 서독을 예외로 삼으려고 노력한 사실과 정황이 기록돼 있다. 그는 소련과의 협상은 “실수”라며 반대했다. 조약이 성사되더라도 서독에 배치된 미군의 72기에 달하는 퍼싱Ⅰ 핵미사일은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 배치된 낡은 퍼싱Ⅰ 미사일을 신형으로 교체하려고 시도했다. 5월에 벨기에 총리에게 이 제안에 찬동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그러면) 이탈리아도 끌어들일 수 있고, 이어 유럽의 입장을 정리해 미국에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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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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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총리는 다른 국가 정상들에게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대한 욕을 하며 근본적 불신을 유지했다. 미국에도 소련을 믿지 말라면서, 크렘린은 미국을 고립시킨 뒤 서독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을 이용해 유럽에서 그들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려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소련의 입장 변화는 단지 돈이 궁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고르바초프 서기장도 서독 방문 계획을 여러 차례 연기하고, 콜 총리의 정적들을 상대하려고 하면서 상호 불신이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기독민주연합 소속이었던 콜 총리의 연립정부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소속 한스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 등의 생각은 달랐다. 겐셔 장관은 모스크바의 태도 변화에는 진정성이 있으므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겐셔 장관 등의 “총리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엄청난 노력”과 갈등 끝에 마침내 콜 총리는 그해 8월에 뒤로 물러섰다.
<슈피겔>은 “만일 콜의 애초 의도대로 됐다면, 불과 2년 뒤 고르바초프가 베를린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을 수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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