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4 16:24
수정 : 2018.04.24 20:49
권력 연장 ‘꼼수’쓰던 아르메니아 사르키샨 총리 23일 끝내 퇴진
“시민들이 이겼다”, 무혈혁명 완수한 수도 예레반은 축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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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 지역의 국가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총리가 23일(현지시각)의 사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국기를 들고 수도 예레반 거리로 뛰쳐 나와 나와 축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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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니콜!”
환호성을 지르는 젊은이들이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야당 지도자 니콜 파시냔을 끌어안고 볼에 키스했다. 그는 불과 하루 전인 22일 전국에 중계된 세르지 사르키샨(63) 총리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사임을 요구한 직후 연금됐지만 이내 풀려나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거리에 차를 세운 아르메니아 시민들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깡충깡충 춤추거나 두 팔을 벌려 기쁨을 표현했다. <비비시>(BBC)가 23일 전한 수도 예레반의 풍경은 빨강·파랑·오렌지색으로 구성된 국기를 흔들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인구 300만명의 소국에서 시민 혁명이 시작된 것은 13일부터였다. 원인은 사르키샨 총리의 장기 집권 야욕이었다.
친러시아 정책을 펴온 사르키샨 총리가 5년 임기의 아르메니아 대통령에 오른 것은 2008년이었다. 연임에 성공한 그는 4월9일에 10년 임기를 끝내고 퇴임했다. 하지만 집권은 끝나지 않았다. 2015년 대통령 권한을 총리에게 대폭 위임한 헌법 개정으로 집권을 연장하려는 ‘꼼수’를 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총리가 되진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17일 자신이 총재인 여당(공화당) 등의 찬성으로 총리로 선출됐다.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은 13일부터 예레반 중심부 ‘민주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치열한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는 곧 리, 바나조르 등 다른 도시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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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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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장기화될 수도 있었던 대치를 끝낸 것은 사르키샨 총리였다. 그는 23일 성명을 내어 “(야당 지도자인) 파시냔이 옳았고, 나는 틀렸다. 거리의 움직임은 내 재임에 반대하는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이자 총리의 직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총리직을 이어받은 것은 카렌 카라페 부총리다. 파시냔은 페이스북에 “아르메니아공화국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축하한다. 승리의 국민들이여”라는 글을 남겼다. 파시냔은 정권 교체를 위한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외신들은 사르키샨의 갑작스러운 사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군복을 입은 채로 시위에 합류한 군인들이라고 지적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의 열망을 막진 못했다.
아르메니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510달러이고 실업률은 18.8%에 이른다. 어려운 경제 사정 탓에 해마다 5만명이나 러시아 등으로 건너가 막노동에 종사한다.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웃 아제르바이잔과는 아슬아슬한 군사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러한 요소가 사르키샨의 ‘빠른 결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은 변수는 아르메니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러시아의 반응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리는 매우 주의 깊게 아르메니아 사태를 보고 있다”고 했지만, 러시아의 개입 의사에 대한 질문에는 “(개입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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