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6 13:17
수정 : 2018.04.26 13:17
100년 전통 폴크스뷔네 극장 총감독 사임
상업주의 논란 속 취임 7개월 만에 낙마
상업화와 흥행 위주 운용으로 저항 만나
베를린의 유서 깊은 극장 폴크스뷔네(민중극장)의 총감독 크리스 데르콘이 지난 13일 전격 사임했다. 취임한 지 7개월 만이다. 애초 베를린시와의 공식 계약 기간은 5년이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5년 임기가 보장된 자리였다. 하지만 취임 전부터 각계각층에서 데르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난무했다.
최근까지도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폴크스뷔네 주위에는 몇 달 전부터 “잘 가, 크리스”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벨기에 출신으로, 전직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큐레이터였던 데르콘은 폴크스뷔네의 성격 및 전통과 파격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폴크스뷔네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베를린 주요 극장이다. 특히 1914년 노동계급의 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세워진 이래 동독에서도 민중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통독 후 재정 악화로 폐쇄 위기에 놓은 극장을 총감독 프랑크 카스트로프가 맡았다. 카스트로프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며 ‘노동계급의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며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후임자 데르콘은 다른 예술단체의 무용, 연극, 퍼포먼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연들을 폴크스뷔네에 초대하는 식으로 운영해 나갈 것이 불 보듯 했다. 취임 전부터 비판이 빗발쳤고, 급기야 지난해 9월에는 저항 예술가 공동체 ‘먼지에서 반짝이로’가 일주일간 폴크스뷔네 극장을 점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폴크스뷔네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상징처럼 됐다. 그들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동경하던 베를린이 이제 공동체 의식은 깨지고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데르콘의 취임이 시스템 교체를 상징한다고 봤다. 즉 정규직 단원을 중심으로 전통적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형식의 ‘앙상블 극장’이 퍼포먼스, 무용, 연극 장르를 넘나들고, 세계 인기 공연들을 극장에 섭외하는 ‘자유극장’으로 변신하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데르콘은 첫 공연으로, 한때 공항이었다가 현재는 시민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템펠호프에서 외부에서 초대한 대규모 무용 퍼포먼스를 무대에 올렸다. 이 퍼포먼스 때 치른 과도한 비용이 복병이 됐다. 독일 유력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재정적 문제가 데르콘 사임의 직접적 원인이었음을 시사했다.
<베를리너앙상블>의 전 총감독 클라우스 파이만(80)은 “예견된 파국”이라고 했다. 그는 “폴크스뷔네 사태는 데르콘 잘못이 아니라 베를린 문화 정책의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급히 임명된 폴크스뷔네 임시 총감독 클라우스 되러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인터뷰에서 다음 총감독이 정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며 “적임자를 찾는데 1년 반에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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