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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내 의지로 내 운명 결정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어요”

등록 2018-05-27 18:09수정 2018-05-28 03:37

미 입양아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이미래
‘나는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은…’ 개인전
새달 16일까지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인되기’ 비디오 프로젝트 등 전시
미 입양아 출신 시각예술가인 이미래(케이트 허스 리)는전세계 35개 도시를 옮겨다닌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미 입양아 출신 시각예술가인 이미래(케이트 허스 리)는전세계 35개 도시를 옮겨다닌 끝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입양으로 한국적을 잃어버릴 땐 타인이 내 운명을 결정했지만, 이제 국적 회복 과정을 통해 내 의지로 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케이트 허스 리.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몇 달 만에 미국 디트로이트로 입양된 그는 자신의 신분인 ‘이중국적자’를 비디오 작품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중국적자>에서 그는 미국 여권과 한국 여권을 양손에 들고 혀가 꼬여 알아들을 수 없을 때까지 ‘이중국적자’를 반복해 발음한다. “저 퍼포먼스에 임하는 나는 정말 진지하지만, 결국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면 그 의미도 상실하게 되는 거죠. 정체성에 대해 반어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는 또 입양과 국적 취득 과정의 서류가 들어 있는 두 개의 태블릿을 옛 동·서독 분단선에서 마주 보게 뒀다. 새달 16일까지 그의 전시회 ‘나는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은 나를 좋아한다’가 열리는 베를린 한국문화원도 동·서독 분단 경계선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입양 과정과 국적 회복 과정을 대비시켜 전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미래라는 한국 이름을 지닌 그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90일간 한국에서 한국어만 쓰며 생활한 내용을 비디오에 담은 <한국인 되기>(Transkoreaning) 프로젝트도 전시하고 있다. 2016년 12월부터 90일간 ‘한국어만 사용한다’는 서약서를 쓰고 서툰 한국말로 생활하는 자신을 모델로 동영상을 찍었다. 국적 회복을 위해 관청을 드나들며 겪는 심경도 보여준다. 좌절하고 슬퍼하는 모습도 솔직히 기록했다. 언어 배우기의 고통과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해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도 한다.

2008년에도 서툰 독일어로 독일에서 90일간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인 되기> 프로젝트는 독일어 프로젝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단다. “독일은 그냥 낯선 나라였지, 나와 큰 관련이 있는 나라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 정체성의 일부인 한국어는 달랐어요. 더 잘해야 한다는 기대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는 20년 전에도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오히려 트라우마를 얻었다고 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997년 처음 한국에 갔을 때는 편견 때문에 힘들었어요. 왜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하냐고 야단치는 사람도 있었죠.”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스스로를 더 잘 정의할 수 있게 됐죠. 한국어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게 됐어요.” 한국인 되기 프로젝트가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힘들었다는 뜻에서 베를린의 상징인 곰과 마늘 줄기를 연결한 작품 <웅녀 되기>도 만들었다.

전시작들 중 펠트 비슷한 것으로 감싼 소고도 설명했다. 소고는 한국 문화를 배우며 알게 된 악기다. 천은 원래 뜨개질로 만든 것인데 여러 번의 세탁으로 해어져서 펠트 같아졌다고 했다. 펠트는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1921~86)에게 회복과 치유의 상징이다. 그는 2차 대전 중 비행기 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타타르족이 준 펠트 담요를 유명한 행위예술 작품에 자주 썼다.

이번 개인전 제목도 보이스의 유명한 행위예술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좋아한다>에서 따왔다. “보이스와 백남준이 절친입니다. 저는 독일에 살고 한국에서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연결시켜 봤죠.”

전시회를 기획한 정가희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통해 태어난 곳, 자란 곳, 사는 곳이 모두 다른 사람의 발전 과정, 위기,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리의 작품들은 외국인, 입양인의 얘기를 넘어 초국가, 디아스포라, 이주,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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