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일 베를린 기독민주당 당사에서 의원 회의 도중 눈을 꼭 감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유럽을 들썩이게 만든 ‘난민 위기’에도 인도적 해법을 추구해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가 난민 문제에 대한 연립정권 내 이견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기민련)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호르스트 제호퍼 기독사회연합(CSU·기사련) 대표 겸 내무장관은 2일 난민 정책에 대한 견해차를 내세워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그가 기자들에게 “3일 안에 두 사무실(장관·당대표 집무실)을 모두 비우겠다”며 사퇴설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기사련 원내대표는 “사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류에 나섰고, 메르켈 총리는 이날 “합의에 도달하길 바라며, 직접 만나 설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페터 알트마이어 경제장관은 “연합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만류에도 제호퍼의 ‘최후통첩’이 현실화되면 70여년 이어진 기민-기사 연합이 깨지고, 2005년 11월부터 총리직을 수행해온 메르켈 총리의 4번째 임기가 3개월 만에 끝날 수도 있다.
기사련은 지난달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메르켈 총리에게 다른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해놓고 독일에 입국하려는 이들을 막는 것에 동의하거나,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이런 취지의 대책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29일 유럽연합 정상회의 때 합동 난민심사센터를 신설하고 역내 난민 이동을 제한하는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또 유럽연합 내 14개국이 자국에서 망명 신청을 한 뒤 독일로 이동한 난민을 되돌려받는 양자 협정에 서명할 것이란 취지의 문서를 메르켈 총리가 기사련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문제는 봉합된 듯 보였다. 그러나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4국은 이를 ‘가짜 뉴스’라고 부정하며 문제가 꼬였다. 제호퍼 장관도 이 ‘브뤼셀 합의’는 “부적절하고 효과적이지 않다”면서 거부했다.
제호퍼 장관이 사임하면 최악의 경우 메르켈 정권이 붕괴하며 독일 정국은 소용돌이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사련이 연정을 유지하려 한다면 내무장관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상황이 마무리될 수 있다.
<도이체 벨레>는 남부 바이에른주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기사련이 오는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에 뒤처질 것을 우려해 한층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주장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연정 내 소수파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도 별도로 난민 문제에 관한 5가지 요구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된 문건을 보면, 사민당은 난민이 모국을 떠나도록 만드는 이유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난민 유입 통로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이민 문제를 관리하는 포괄적 법안과 고용시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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