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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프랑스팀. Sportimage via PA Image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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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인종차별에 더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등으로 반이민정서 급부상한 프랑스
‘다인종 대표팀’ 러시아월드컵 우승 후 프랑스 안팎서 갈등 봉합 긍정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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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프랑스팀. Sportimage via PA Image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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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프랑스에서는 축구 국가대표팀 선발에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선수들의 수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폭로돼 큰
파장이 일었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전인 10대 초반 선수들을 상대로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비백인 선수들의 수를 제한하기 시작하자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 ‘인종 쿼터’가 실제 제도화하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시도를 한 프랑스축구협회 고위직들은 한동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올해 초 국내에서 논란이 된 한국프로농구연맹의 ‘신장 2미터 이상 선수 퇴출’과도 유사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블랙(black, 흑인)-블랑(blanc, 백인)-뵈흐(beur, 북아프리카계)’ 다인종팀으로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이 팀은 프랑스 사회 인종 화합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당시에 이 화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 2위를 기록한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의 아버지이자, 1998년 당시 국민전선 대표였던 장마리 르펜은 1998년 월드컵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두고 “외국에서 선수들을 데려와서 프랑스팀이라고 하는 게 어색하다”, “프랑스팀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후에도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당시 대표팀 선수들에게 실력과 관계없는
인종 비하 욕설이 쏟아지거나, 2016년 유로대회에서 대표팀 선발 라인업을 두고 인종차별 논란이 이는 등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둘러싸고 인종과 관련한 논쟁과 해프닝들이 늘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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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결승전 출전 프랑스 대표팀. PA Image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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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도 당연히 프랑스 축구대표팀이 흑인이 많은 팀 구성 때문에 주목받았다. 카메룬계이자 알제리계인 킬리안 음바페 등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부모가 나이지리아, 카메룬, 알제리 등에서 온 이민 2세대다. 프랑스팀의 경기를 지켜봐 온 세계 축구팬들이 “아프리카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수년 동안 크고 작은, 그리고 때로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공격과 테러를 겪으면서 프랑스에서는 반이슬람, 반난민정서가 힘을 키워왔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우승이 프랑스 사회를 다시 다문화와 이민자 포용 정책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분위기로 돌아가게 만들 계기가 될지를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화합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프랑스 진보 매체 <리베라시옹>은
관련 기사에서 “거리로 몰려나온 수백만의 축구팬들은 선수들의 출신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들은 삼색기를 흔들고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고 결승전 직후 거리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선수들에 대해서는 “‘블랙-블랑-뵈흐’는 없고 공격수, 수비수, 태클하는 사람, 골키퍼만 있었다”며 “출신지가 어디든 모두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영웅들”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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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결승전 후 킬리안 음바페를 포옹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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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감히 프랑스 대표팀의 구성을 공격하지 못했다”는 <허프포스트> 프랑스판의
정치 기사도 프랑스 정치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월드컵 우승이 최고의 호재가 될 거라는
분석들이 프랑스 안팎에서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중도 노선을 강조하며 39살에 대통령이 됐고, 자신이 만든 중도 신당을 원내 최대 정당으로 만들기까지 했지만 갈등 봉합에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인터넷에는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이민자들의 나라다”, “19세기 이후 이민자들이 프랑스에 많은 걸 가져다줬다”는 이야기들도 다시금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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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프랑스 축구대표팀.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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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에서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 문제를 겪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언론들은 프랑스 안의 이런 분위기를 재빠르게 분석하고 전달했다. 특히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비판적인 미국의 주류 진보 매체들은 월드컵 우승이 프랑스 사회 갈등 봉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일대학교에서 이민사를 연구하는 패트릭 웨일은 <뉴욕타임스>에 “(우승 이후 프랑스에) 국가적으로 긴장이 경감됐고 안도하는 분위기 같은 게 퍼졌다”고
풀이했다. <시엔엔>
(CNN)은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모든 이민자의 승리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더이상 지구상 어떤 나라든 이민자가 비이민자들과 같은, 새로운 세계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며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이민이 우리 모두를 위한 더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미래를 향한 키를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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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월드컵 결승전을 보고 있는 프랑스 국민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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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낙관적인 분위기를 반기면서도 선수들의 인종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걸 조심하는 모양새다. 주미프랑스대사는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아프리카의 승리”라고 표현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방송인인 트레버 노아에 공식 항의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트레버 노아는 이에 “미국에서 아프리카인이면서 미국인일 수 있는 것처럼 아프리카계프랑스인들도 아프리카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프랑스인일 수도 있다”고
반박했고, 양쪽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지금의 프랑스 사회는 인종적 긴장 상태에 놓여있으며, 이번 월드컵 우승을 그런 긴장을 녹일 화합의 기회로 삼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고도 풀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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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 후 귀국한 프랑스 대표팀의 샹제리제 거리 행진 현장.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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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샹제리제 거리 행진을 지켜보는 파리 시민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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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러시아월드컵에는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 대표팀에도 이민자 출신 선수들이 있었다. 이 중에는 프랑스에서 자라며 축구를 배웠지만 다른 나라 대표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도 있다. 프랑스 대표팀으로 활약한 킬리안 음바페, 은골로 캉테, 폴 포그바 등은 이민자가 많은 파리 교외
‘방리유’(파리 교외의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축구를 배우며 자란 노동계급 출신이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복수국적으로 포르투갈 대표팀으로 뛴 라파엘 게레이로(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프랑스와 모로코 복수국적자로 모로코 대표팀으로 월드컵 출전한 메디 베나히아(유벤투스) 역시 방리유 출신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점을 들어 “월드컵은 이민자 드림의 승리”라고도
정리하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프랑스 대표팀이 다인종사회에 대한 과제와 생각 거리를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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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image via PA Image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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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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