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7.23 19:59 수정 : 2018.07.23 22:22

이탈리아 시민들이 지난 18일 로마 내무부 청사 앞에서 손에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물감을 칠한 채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의 강경한 반이민, 반난민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강제 철거 착수
‘본국’ 송환 유도하나 호응도 낮아
우크라이나에서는 극우단체들이 나서
집시촌 불사르고 폭력 행사 잇따라
“파시즘 부활” 경계 목소리 나와

이탈리아 시민들이 지난 18일 로마 내무부 청사 앞에서 손에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물감을 칠한 채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의 강경한 반이민, 반난민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유럽 정치를 잠식하는 극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약소민족 중의 약소민족인 집시한테 향하고 있다. 1천여년 전 인도 북부를 떠나 유럽으로 온 이래 차별, 배제, 탄압의 역사를 이어온 집시들의 수난사가 다시 본격화되는 상황에 우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2차대전 이래 최초의 극우·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이탈리아가 ‘집시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3월 총선에서 불법 이민자 50만명을 내쫓겠다고 약속하고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해 내무장관이 된 극우 정당 ‘동맹’의 대표 마테오 살비니는 지난달 인구조사를 벌여 시민권이 없는 집시는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로마시 당국과 경찰은 지난달 말 450여명이 컨테이너에 사는 테베레강 근처의 집시 거주촌을 철거했다. <라 레푸블리카>는 아이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불도저를 동원한 철거가 이뤄졌으며, 종교 단체 등에서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이 나왔다고 전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이탈리아와 로마시 정부는 이탈리아 사회에 동화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중에 택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1인당 연간 최대 1000유로(약 133만원)를 주는 조건으로 ‘본국’ 루마니아로 돌아가는 안을 내놨다. 라지 시장은 최근 루마니아를 방문해 집시 재정착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철거가 이뤄진 거주촌에서 루마니아로 가겠다고 신청한 이는 14명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로마시는 다른 집시 거주촌들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가 겉으로나마 경제적 유인을 내건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노골적 폭력으로 집시를 내쫓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맞섰던 민병대 출신들이 화살을 집시에게 돌리고 있다. 수도 키예프에서는 지난 4월 ‘C14’라는 극우 단체가 천막촌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집시들을 내쫓았다. 이후 집시 거주촌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집시들은 야생화 부케를 팔아 생활을 유지할 뿐 키예프 시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극우 단체들은 이들이 절도와 구걸을 하며 도시를 더럽혔다고 주장한다. 일련의 공격 이후 키예프에서는 집시를 보기 어렵게 됐다.

<뉴욕 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폭력을 수수방관해왔다고 지적했다. ‘C14’는 철거 폭력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버젓이 인터넷에 올렸다. 지난달에는 다른 극우 단체 회원들이 집시 남성을 살해했다. 이들은 집시 추적 장면을 ‘집시 사냥’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정부가 미온적인 이유로는 극우 인사들이 ‘전쟁 영웅’이라는 점과 정치적 이용 가치가 있다는 점이 꼽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엔 등이 항의하는 가운데 지난달에야 집시 거주촌 폭력 사건 관련자에게 가택연금 처분을 내렸을 뿐이다.

극우 세력이 ‘소프트 타깃’인 집시에 대한 탄압을 노골화하는 것에 나치즘 또는 파시즘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나치는 2차대전 때 집시 30만명을 살해했다. 하지만 집시 추방 주도자들은 ‘사회 정화’가 무슨 잘못이냐고 한다. ‘C14’를 이끄는 예우헨 카라스는 “우리는 파시스트로 불린다.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다”며 “범죄자들에 대응하는 것일 뿐 인종주의적 차원의 공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도 자신은 인종주의자나 파시스트가 아니며 “이탈리아 우선”을 추구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