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유럽연합 정례 회의가 열리는 17일 벨기에 브뤼셀의 회의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브뤼쉘/EPA 연합뉴스
영국이 유럽연합(EU)과 탈퇴 조건에 합의하지 못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할 우려가 나오면서 영국 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영국 진출 기업들의 사업 축소·철수로 인한 대량 해고 우려는 물론, 유럽대륙과의 교역 중단 우려로 사재기 열풍도 불고 있다.
브렉시트 시한(2019년 3월)이 불과 5개월 남았지만, 조건을 둘러싼 영국-유럽연합의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외신들은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상에 진척이 없었고, 정상들 사이에 “최악의 상황(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청사.
브렉시트 협상의 최대 쟁점은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다. 아일랜드는 독립국이자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길고 긴 민족·종교 분쟁을 벌이던 이들은 1998년 지역 내 평화와 화해를 위한 ‘성금요일 협정’을 맺고,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국경 관리를 완화했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관세 등의 문제로 교역 통제를 위한 ‘장벽’이 설치될 수 있다.
유럽연합은 브렉시트 뒤에도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가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남는 안을 제시했다. 영국은 이에 대해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남는 안은 “영국의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벨기에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이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영국은 일단 자국이 2021년까지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남는 제3의 안으로 맞서는 중이다. 이와 함께 메이 총리는 지난 7월 브렉시트 후에도 영국이 공산품·농산물 교역에서 유럽연합 내 국가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는 ‘소프트 브렉시트’안(체커스 계획)을 내놨다. 정치적으로는 유럽연합과 결별하지만 관세동맹에 남아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연합은 이에 대해 영국이 브렉시트로 난민과 분담금 부담을 거부하면서 관세동맹의 이익만 취하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영국 내 강경론자들도 메이 총리 안에 대해 “영국을 사실상 유럽연합에 남겨두려는 시도여서 브렉시트 정신에 반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영국에선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7일 일부 영국 시민들이 쌀, 파스타, 물, 통조림 등을 사재기하는 상황을 조명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교역 기준이 사라져 대혼란이 예상되고, 최악의 경우 일시적 교역 중단도 각오해야 한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식량의 3분의 1을 수입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또 협상이 타결돼도 영국이 관세동맹 잔류에 실패하면 관세 부과로 인한 식료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영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의 ‘엑소더스’ 조짐도 보인다. 골드만삭스와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주요 금융 기업들이 브렉시트에 대비해 영국 내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브렉시트 결정 뒤 런던 인력의 절반을 줄였고, 홍콩상하이은행은 1000명을 프랑스로 이동시켰다. 유럽의 금융 허브인 런던의 ‘시티’를 시작으로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지면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다.
막판 타결의 여지는 남아 있다. 외신들은 양쪽이 협상 마감 시한인 10월을 넘겨 올해 말까지 협상을 지속하는 안이나 이때까지도 합의가 안 되면 브렉시트 실행(협상) 시점을 1년 연장하는 안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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