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브렉시트 앞둔 영국은 분열 중
브렉시트 날짜 5개월 앞으로 다가와
이번달까지 협상 마쳐야 비준 가능
아직 합의 못해 ‘노딜’ 닥칠 위기
20일 70만명 브렉시트 반대시위
젊은층 “국민투표 다시 하자” 주장
재투표 가능하지만 현실성은 낮아
EU 완전히 떠나느냐, 절반만 떠나느냐
재투표하느냐…여전히 갈라진 여론
‘세기의 도박’은 어떤 결말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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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영국 런던 거리를 메운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나는 유럽연합을 사랑한다” “나는 16살. 당신의 투표가 내 미래” 등 여러 주장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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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내년 3월 유럽연합을 탈퇴할 예정이다. ‘이혼’ 날짜까지 남은 시간은 단 5개월이다.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유럽연합과의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정치권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브렉시트라는 ‘세기의 도박’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나는 16살이다. 브렉시트는 내 미래를 빼앗아갔다.” “나는 19살이다. 그땐 투표할 수 없었다. 내 선택권을 돌려달라.”
지난 20일 영국 런던 시내를 가득 메운 목소리다. 시민 70만명이 “미래를 향한 행진”이란 이름으로 거리로 나왔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 이후 최다 인파였다고 한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부모들,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층이 눈에 띄게 많았다. 영국 전역에서 출발한 고속버스 150여대가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서 850㎞ 떨어진 스코틀랜드 북부 섬 오크니에서 온 시민들도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다시 국민투표를 하자”고 외쳤다. 런던 파크레인부터 의사당까지 유럽연합(EU) 깃발과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함께 흔들며 행진했다. 주최 쪽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와 현재 상황이 많이 변했다”며 “브렉시트에 따른 비용과 복잡성이 새롭게 등장했다. 시민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3년 유럽연합의 전신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영국이 46년만인 2019년 3월29일, 유럽연합을 공식적으로 탈퇴(브렉시트)할 예정이다. ‘이혼’ 날짜까지 남은 시간은 단 5개월이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탈퇴조건 등을 둘러싼 유럽연합과의 협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브렉시트가 향후 영국, 유럽, 그리고 전세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내부에선 여전히 ‘하드 브렉시트(유럽연합 체제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와 ‘소프트 브렉시트(공산품, 농식품 분야는 유럽연합 단일시장 안에 남아있는 것), ‘브렉시트 전면 재검토’라는 세 가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2003년 이후 최대 규모 시위
브렉시트는 ‘설마 그럴까’ 했던 결과였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발표된 도박사이트 베팅 확률은 잔류가 압도적이었다. 2016년 6월23일 실시된 국민투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유럽연합에 남는다’는 의견은 52%로, ‘떠난다’(48%)를 근소하게 앞섰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탈퇴 의견이 51.9%, 잔류 의견이 48.1%였다. 민심은 빈부, 세대, 지역으로 나뉘어 갈등을 일으켰다. 밀려드는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느낀 저소득층,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뿌리 깊은 반유럽연합 정서를 간직해 온 노년층에서 탈퇴 의견이 많이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는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한 비율이 65살 이상 집단에서 64%로, 25살 미만 집단(29%)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고 밝혔다.
유럽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인식하며 살아온 젊은층에게 브렉시트는 ‘세계와의 단절’ 이상의 거대한 장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브렉시트 반대를 외치는 단체 ‘피플스 보트’(People’s vote)를 구성했고, 지난 20일 런던 시위에서 목소리를 표출했다. 지역구 의원에게 ‘두번째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자는 ‘라이트 디스 롱’(write this wrong) 온라인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하원에 출석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및 의정서가 95%가량 합의됐다”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전면 합의까지는 여전히 장애물이 쌓여있다. 대표 쟁점은 북아일랜드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섬의 북동쪽 지역으로 아일랜드가 독립한 뒤에도 영국령에 속해 있다. 유럽연합은 세관 등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일랜드와 맞닿아 있는 북아일랜드를 관세동맹에 남기는 안을 제시했다. 영국은 이에 대해 같은 영국 안에서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지역과 북아일랜드 지역을 가르는 장벽이 놓이게 되는 것이라며 “영국 통합을 저해한다”고 반발했다. 메이 총리는 북아일랜드 사안에 대한 추가 협상이 끝날 때까지 영국 전체가 유럽연합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메이 내각이 밀어붙이는 협상안은 이른바 ‘체커스 플랜’이다. 메이 총리의 지방 관저인 체커스에 각료들을 초청해 의견을 모았다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 상품과 농산물, 식품 분야에 한해 지금처럼 제한 없이 교역할 수 있도록 자유무역지대를 수립하고, 서비스와 금융 분야는 각국과 개별적 협정을 맺어 독자적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또 자유로운 국경 통과를 금지하고, 영국 내에서 유럽사법재판소 등의 권한을 거부하겠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 쪽에선 체커스 플랜을 반대한다. “유럽연합 단일시장을 약화할 수 있어 수용이 어렵다”는 이유다. 유럽연합 단일시장의 4가지 기둥은 상품, 자본, 서비스, 사람, 이 네가지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영국이 이민자 문제(사람의 이동) 등은 회피하면서, 교역 부분에선 현재와 같은 이익을 취하려 하는 ‘체리 피킹’(유리한 것만 취하기)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매년 180억파운드(약 26조3692억원)를 분담금으로 내 왔다. 분담금 순위로는 독일, 프랑스에 이어 28개 유럽연합 회원국 중 3위다. 영국이 빠져나가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더 큰 부담을 지게 됐으며, 각종 보조금도 폐지될 위기다. 영국이 회원국 분담금과 연금 충당금, 각종 출연금 등 브렉시트 댓가로 정산해야 할 이른바 ‘이혼합의금’은 390억파운드(57조257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양쪽이 각종 협상에 첨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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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4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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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 안, 영국인 64%가 불신
1단계 협상에서 양쪽은 상대방 국민에게 한시적 거주권을 부여하고, 영국과 아일랜드 간 공동여행구역을 유지해 사람과 물류 이동을 원할하게 하는 방안 등에 합의했다. 2단계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17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도 메이 총리와 회원국 정상들 간에 견해차만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브렉시트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영국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그간 유럽연합과 영국 쪽은 유럽의회와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의 비준 일정을 고려해 협상이 이번달까지는 타결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양쪽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닥칠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과 유럽연합이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채 탈퇴시한을 맞이하는 것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 교역이 중단되는 일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내 다른 나라 기업들과 맺은 계약도 불확실한 지위에 놓일 수 있다.
이에 당초 내년 3월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점부터 2020년 말까지 21개월 동안 이행하기로 했던 전환기를 1년 연장하는 방안이 등장했다. 이 기간 영국은 유럽연합 분담금을 내고 규정을 따르게 되지만, 정책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 메이 총리가 먼저 이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은 발칵 뒤집혔다.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파는 내부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전환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내비쳤다는 데 발끈했다. 전환 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은, 유럽연합에 줘야 할 분담금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메이 총리를 낙마시키기 위한 ‘쿠데타’를 논의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메이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긴급 수송선단을 구성하고, 식료품과 의약품의 공급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비상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스로 메이 정부가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협상을 체결한다 해도 사분오열된 영국 의회가 승인을 해줄지도 관건이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놓여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임 총리는 2015년 총선 당시 유럽연합 내 영국의 지위 변화가 필요하다며 브렉시트를 걸고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선거에서 보수당은 23년 만에 단독 과반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후 유럽연합 ‘잔류파’ 입장에 서서 민심을 달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브렉시트 탈퇴가 결정된 뒤, 캐머런 총리는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다음 등판한 지도자가 메이 총리다. 시작은 의욕적이었지만, 강력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른 조기 총선이 ‘헝의회’(과반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는 의회)로 결론나면서, 오히려 ‘하드 브렉시트’와 ‘소프트 브렉시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메이 총리의 취임 2주년을 맞아 영국 <스카이 뉴스>가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면, 영국 시민의 64%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안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2% 만이 메이 총리가 현실성 있는 최고의 협상안을 들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당 내부 반발 뿐 아니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연방주의 정당 민주연합당(DUP)마저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안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 또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혼란을 발판으로 메이 총리의 저격수로 사디크 칸 런던시장이 나서고 있다. 그는 차기 노동당 총리 후보로도 꼽힌다. 그는 지난 20일 런던 시위에 직접 나와 “국민투표를 다시 하자”고 요구했다.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에서 국가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를 ‘배드 딜’ 또는, 여전히 나쁜 ‘노딜’로 이끌고 있다”며 “브렉시트가 국가의 성장, 일자리, 생활 수준을 모두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투표는 정치위기 가중시킬 듯
지금 영국에선 두 번째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브렉시트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던 제1야당인 노동당은 ‘피플스 보트’와 함께 “다시 국민투표”를 외치고 있다. 메이 총리는 “두 번째 국민투표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영국 시민은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투표했다. 우리는 2019년 3월29일에 떠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노동당과 ‘피플스 보트’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의회의 발의와 표결 과정을 거치면 국민투표는 다시 치러질 수 있다. 국민투표 자체에는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다시 투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재투표를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협상 기한 연장 요청을 해야 하고,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로 유럽의회 구성이 완전히 바뀌기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문제는 재투표가 전면에 부상됐을 경우 영국에 닥칠 정치적 위기다. 예측 불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다시 한다는 것은 2016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브렉시트 투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여론이 ‘잔류’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의회의 분위기를 바꿀 만큼 결정적인 움직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또 “현재는 메이 총리가 유럽연합과 협정을 체결하고, 의회가 이를 받아들이는 안이 가장 설득력 있는 가정”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가능성을 짚어본다면 영국이 탈퇴 후 다시 유럽연합에 가입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모든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하고 유럽연합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 유럽연합 쪽에서 유로화 사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해도,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일은 탈퇴하는 일만큼 복잡하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캐머런 전임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4개월여 앞둔 2016년 2월 한 언론사에 기고한 글에서 “브렉시트는 세기의 도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현대사에 브렉시트를 결정한 2016년 6월23일은 어떤 날로 기억될까. 대박이 터질지, 아니면 빈털터리가 될지, 영국 시민들은 2년이 넘도록 마지막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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