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9 17:49
수정 : 2018.10.29 20:35
[가신이의 발자취] 빔 콕 전 총리를 추모하며
1982년 노총위원장 시절 결단
“협약 뒤 네덜란드 비약적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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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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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네덜란드의 빔 콕 전 총리가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2004년 2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기획위원장 자격으로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의 노사관계를 둘러보기 위해 유럽을 방문했는데, 그때 콕 전 총리를 만나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뒤 한국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 식사를 하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눈 인연이 있다.
이야기는 그 전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5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그때 언론 인터뷰에서 불신과 대립으로 점철된 한국의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네덜란드 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부연 설명을 요구하기에 나는 네덜란드 모델이란 노조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경영자는 노조의 제한된 경영 참여를 허용하는 가운데, 노사가 대타협을 함으로써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앗불싸, 그 다음 날부터 나는 보수 언론의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다른 게 아니고 경영참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보수 언론에서는 청와대 정책 책임자가 노조의 경영참여를 주장하는 것은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고방식이라고 총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우리나라 보수파에서 경영참여를 얼마나 싫어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말을 할 때 앞에 ‘제한적’이란 수식어를 붙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청와대 춘추관에 나가서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으나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네덜란드 파동은 한 달간 계속됐다. 네덜란드 모델이 매일같이 언론에 오르내리니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법무부 장관이 나한테 “도대체 네덜란드 모델이 뭡니까?” 하고 묻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뒤 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책기획위원장으로서 노사 대표들과 함께 유럽의 노사관계를 보러 갔고, 네덜란드에서는 콕 총리를 면담하고 싶다고 신청했더니 경제사회위원회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콕 전 총리는 유명한 바세나르 협약(1982년)의 당사자였다. 당시 노총 위원장으로서 과감히 노사정 대타협에 서명을 해서 경제 기적을 일으킨 주역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뒤에 경제 장관에 이어 총리까지 올랐다. 그는 바세나르 협약을 맺을 당시 하도 경제가 어려워 대타협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동료 노조원들로부터 배신자란 욕을 먹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경제는 바세나르 협약 뒤 비약적 발전을 해서 ‘네덜란드의 기적’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가 됐으니 배신자란 비난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렵고 고용 사정도 나빠 노사정 대타협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한국에도 빔 콕이 나타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빔 콕 전 총리는 한국에도 애정이 많아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방한해서 강연, 인터뷰 등 강행군을 불사했다. 늘 웃음을 머금은 얼굴에 조용한 어조로 말씀하던 이 시대의 거인이 새삼 그립다.
이정우·한국장학재단 이사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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