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0 19:57
수정 : 2018.11.20 22:03
도쿄지검, 도착 정보 미리 입수 뒤 공항에서 임의동행
닛산 전면적 정보 제공…회장 수사에 사법거래 적용
4개국 고급 주택 유지 비용 회사에 비용 떠넘겨
‘곤의 자동차 제국’ 주도권 프-일 미묘한 입장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각별히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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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회장.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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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4시35분께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얼라이언스 회장을 태운 비행기가 착륙했다. 대기하던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은 곧바로 임의동행 형식으로 그를 연행했다. 도쿄지검은 이날 저녁 조사 도중 닛산자동차에서 받은 보수를 5년간 실제보다 50억엔(약 500억원)가량 적게 신고한 혐의 등으로 그를 체포했다. 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서 그가 20년 가까이 일군 ‘자동차 제국’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 치밀한 체포 작전…닛산은 왜 회장을 밀고했나 <아사히신문>은 도쿄지검이 몇달 전부터 치밀하게 내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도쿄지검은 지방에서 검사를 충원받고 해외에도 검사를 보내 사전 작업을 했다. 19일을 체포 날짜로 잡은 이유는 그레그 켈리 닛산 공동대표를 함께 붙잡기 위해서였다. 미국 변호사 출신인 켈리는 일본에 잘 오지 않지만 이날 다른 비행기로 입국했다.
수사는 닛산이 전면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에 시작되고 진행됐다. 임원 여럿이 사법거래(플리바게닝)를 했다. 일본 검찰은 6월부터 다른 사람의 범죄 정보를 제공하면 처벌을 감면하는 사법거래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 활용은 이번이 두번째다. 닛산은 곤의 체포 몇 시간 뒤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적 목적으로 자금을 유용하고 경비를 부정 사용했다”고 폭로하며 자사 회장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었다.
검찰은 곤이 2011~2015년 99억9800만엔(약 1000억원)의 보수를 받았으나 당국에는 49억8700만엔만 받았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류 기업 최고경영자라도 미국처럼 초고액 연봉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곤은 임원들의 고액 연봉에 대한 비판 목소리에 “세계에서 통용될 만한 간부를 채용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곤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레바논 베이루트,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고급 주택을 회사에서 제공받아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닛산 자회사가 구입과 유지 비용 수십억엔을 부담했다는 것이다. 곤은 브라질 태생으로 레바논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암스테르담은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본사가 있는 곳이다.
■ “1인 권력 집중이 문제”…암투설도 사이카와 닛산 사장은 19일 밤 기자회견에서 “한 사람에게 권한이 너무 집중됐다. (이 사건은) 긴 세월에 이르는 곤의 통치가 낳은 어두운 측면”이라고 말했다.
곤은 2조1000억엔(약 21조원)의 빚에 허덕이던 닛산을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로 전환시키며 세계적 경영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한 공장에서 르노와 닛산 브랜드를 단 차량을 동시에 생산하는 파격도 보여줬다. 그가 이끈 얼라이언스는 지난해 차량 1060만대를 만들어 독일 폴크스바겐에 이어 세계 생산량 2위에 올랐다.
그러나 곤이 2005년 르노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까지 겸하면서 ‘1인 독재’의 부정적 측면이 점점 부각됐다. 그는 2016년 프랑스 베르사유궁의 별궁에서 재혼 결혼식을 올리며 배우들에게 18세기 복장을 입히는 등 사치스런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3사 얼라이언스의 독특한 구조 탓에 일각에서 암투설도 나온다. 르노는 닛산을 완전히 인수한 게 아니라 43%의 지분을 보유해 우위에 선 입장이고, 닛산도 르노 지분 15%를 갖고 있다. 닛산은 다시 미쓰비시 지분 34%를 확보하는 식으로 3사가 연결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구제 대상이었던 닛산이 잘나가게 되면서 외국자본이나 외국인 경영자에 대한 일본 쪽 반감이 잉태됐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르노의 1대주주는 지분 15%를 보유한 프랑스 정부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르노-닛산의 통합을 강화하려 한다는 관측에 닛산 내부에서 위기감이 돌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내부 제보자가 비리를 알렸다는 게 사실이겠지만, (일본) 국내 정치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놓고 “사실관계에 대해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프랑스 정부는 주주로서 얼라이언스의 안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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