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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4 17:38 수정 : 2019.07.04 20:22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5월11일 소련의 동베를린 봉쇄에 맞선 ‘베를린 공수작전’ 70돌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EU 첫 여성 집행위원장 오르는 폰데어라이엔
일곱 아이 기르며 경제학도→의사→정치인
“첫아이 낳자 당연히 직장 그만둔단 분위기”
아이·부엌·교회 ‘3K’ 속박 정면돌파 상징

별명은 ‘모든 멀티태스커들의 어머니’
“왜 남자 장관들엔 육아 부담 안 묻나 의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이 5월11일 소련의 동베를린 봉쇄에 맞선 ‘베를린 공수작전’ 70돌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독일 사회는 서유럽 기준으로 볼 때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독일 여성들을 짓눌러온 ‘3K’라는 개념은 여자는 아이(Kinder), 부엌(K?che), 교회(Kirche)에 전념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양 전통사회의 삼종지도와 맥락이 닮았다.

2일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추대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1)은 독일 최초 여성 국방장관에 이어 첫 유럽연합 여성 집행위원장이라는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동독 출신 여성으로 최장수 총리 타이기록을 세울 예정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대단하지만, 일곱 자녀를 기르며 ‘유럽의 정상’까지 오르는 폰데어라이엔의 역정도 괄목할 만하다.

폰데어라이엔은 ‘모든 멀티태스커(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의 어머니’로 불린다. 평균 출산율이 1.5명인 독일에서 7명의 아이를 낳고, 늦깎이로 정치에 입문해 보수적인 기독교민주연합에서 승승장구했기에 붙은 별칭이다. 그의 상승에는 타고난 행운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고위직이었기에 출생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살까지 살며 프랑스어에 능통하게 됐다. 니더작센주 총리까지 지낸 아버지 쪽도 명문가이지만 남편 쪽도 부유한 실업가 가문이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경과 고민, 결단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여행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하노버의대를 나온 부인과 의사였지만 ‘전통’이라는 벽을 만났다. 그는 2013년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첫아이를 낳았을 때 동료들은 자신이 당연히 그만두는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사가 1년 출산휴가와 복직을 보장하며 용기를 줬다고 했다. 2009년 대담에서는 “아이 둘을 기를 땐 이런 식으로 하다간 쓰러질 것 같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안 되겠냐고 병원에 사정한 적도 있다”고 했다. 동료 의사인 남편이 미국 스탠퍼드대 방문학자로 가는 바람에 따라가 4년간 전업주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력을 이어갔고, 2001년 정치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메르켈 총리의 덕도 컸다. 2005년 집권한 메르켈 총리는 폰데어라이엔을 가족청소년장관으로 임명한 데 이어 노동장관을 거쳐 2013년에는 국방장관으로 앉혔다.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내각에 내내 머문 유일한 장관이다. 그는 노동장관 때는 남성 육아휴직 확대에 주력했다.

폰데어라이엔은 자신이 정치를 시작해 더 바빠진 게 역설적으로 남편이 자기 몫을 찾는 계기가 됐다고 2009년 대담 때 말했다. “남편은 갑자기 아버지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며 “남편을 이류 엄마로 만들지 말고 일류 아빠로 만들라”고 했다. ‘어떻게 일곱 아이를 키우며 많은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수백 번은 받았을 것’이라는 말에는 “많은 엄마들이 나를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왜 남성 장관한테는 그렇게 묻지 않는지 의아하다”고 답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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