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12 09:31 수정 : 2019.11.08 14:01

지난 9월21일 ‘나의 몸, 나의 선택’ 구호를 외치며 베를린 시내를 걷고 있는 여성들. 채혜원 제공

[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⑦ 낙태죄 폐지 운동

지난 9월21일 ‘나의 몸, 나의 선택’ 구호를 외치며 베를린 시내를 걷고 있는 여성들. 채혜원 제공

‘나의 몸, 나의 선택―당신의 목소리를 높여요!’(My Body, My Choice―Raise Your Voice!) 현재 독일 전역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9월21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행동의 날’을 맞아 베를린에서 시작된 외침은 독일의 다른 도시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달 28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에는 연방 보건부 앞에서 여성 수백명이 모여 “독일 형법 218·219조 폐지!”를 외쳤다.

독일 형법 218조는 낙태한 자에 대해 벌금 또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가 지정한 상담기관에서 의무 상담을 받은 임신 12주 이내의 여성이거나 임신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산모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이 확인된 경우 등 처벌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활동가들은 임신중지(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218조 폐지’와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해왔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연대’ 활동가인 케이트는 “형법 218조가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고 말했다. 이 조직은 의료 교육과정에 임신중절 수술 포함을 의무화하고, 임신중지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정상적인 의료 절차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알리고 있다.

형법 218·219조 폐지를 외치며 연방 보건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 채혜원 제공.

최근 독일 의대생들은 의료 교육과정에 ‘임신중절 수술’을 포함하지 않은 점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의학생 연대’에서 활동 중인 캐럴라인(베를린 샤리테 의대 재학)은 독일 언론 <도이체 벨레>(DW)와 한 인터뷰에서 “교육과정에 임신중절 수술 관련 교육훈련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외부 세미나를 통해 배우고 있다”며 “지금처럼 의료 교육과정에 임신중절 관련 내용이 빠져 있다면 시술하는 의사가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럴라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연방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초 임신중절 시술을 하는 독일 의료기관은 총 1150곳에 그쳤다. 이는 2003년 약 2050곳이었던 것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여성은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시술 상담을 받으려면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찾아가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는 임신중지와 관련해 접근 가능한 정보를 제한하는 형법 219조에서 비롯된다. 이 조항은 그간 의료진과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절 수술 시행 여부는 물론 수술 과정과 위험성 등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올해 초 법안이 일부 개정돼 수술이 이뤄지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관련 의료 정보를 얻는 데 제한이 따른다.

베를린에 사는 동안 나는 ‘낙태죄 폐지’를 위해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여성을 만났다. 지난해 국민투표로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뤄낸 아일랜드,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금지법’을 가진 폴란드와 몰타, 최근 ‘낙태금지법’이 다시 시행되고 있는 미국 활동가까지.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 중 하나는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경우에만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지 관련 정보와 시술에 접근할 수 있다”였다.

낙태죄 폐지 구호가 독일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다. 채혜원 제공.

국제기구 ‘마리 스톱스 인터내셔널’ 보고서를 보면, 2018년 세계에서 이뤄진 임신중절 수술의 절반 정도가 접근이 제한돼 안전하지 않게 시행됐다. 이로 인해 매년 약 700만명의 여성이 치명적 상처를 입고, 2만2천명의 여성이 사망한다고 한다. 활동가들의 말대로 ‘낙태 금지는 낙태를 근절하지 않는다. 여성을 죽일 뿐이다.’

1970년 초부터 “나의 배는 나의 것!”이라고 외친 여성들의 구호가 2019년에도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독일 의회는 더 늦기 전에 ‘형법 218·219조 폐지’로 이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채혜원: <여성신문> <우먼타임스> 등에서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chaelee.p@gmail.com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다이어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