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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9 17:59 수정 : 2019.12.20 02:31

프랑스 노조의 총파업으로 주요 도심의 철도·지하철 교통이 마비된 가운데, 19일 아침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지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 전역 ‘노란 조끼’ 1년 만에 노조 총파업
14일째 주요 철도·지하철 교통마비…에펠탑 폐쇄
노조와 마크롱, 성탄절 국면 어느 쪽이 먼저 굴복?

프랑스 노조의 총파업으로 주요 도심의 철도·지하철 교통이 마비된 가운데, 19일 아침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지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전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연금 수혜를 제공하다 보니 결국 매우 복잡한 구조로 설계돼버린 프랑스의 ‘비잔틴식’ 퇴직연금체제 개혁을 놓고 총파업이 일어나면서, 프랑스가 ‘노란 조끼’ 시위 1년여 만에 또다시 ‘불만의 겨울’에 들어서고 있다. 14일째 주요 도심의 철도·지하철 교통이 마비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조합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둘 다 다가오는 ‘성탄절’을 볼모 삼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노란 조끼 때 백기를 들고 말았던 마크롱은 이번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이다.

연금개혁안 반대 총파업·시위는 지난 5일 첫 대규모 시위 이래 간헐적으로 이어지면서 지난 17일 세 번째 총파업 행진까지 진행됐다. 철도 노동자가 주축이고 교사·병원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로 가담하고 있다. 프랑스 전역 100여 곳 이상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에펠탑은 시위로 폐쇄됐다. 공공 전력·가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 보르도와 리옹 등지의 수만 가구와 사무실에 전력 공급이 끊기고 가스 공급도 차단됐다. 국영 각급 학교는 휴교하거나 수업을 감축하고 몇몇 대학은 종강시험을 연기했으며, 가르니에 오페라극장과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의 공연 수십 편이 취소됐다.

프랑스의 퇴직연금체제는 ‘관대’하기로 유명하다. 50대 은퇴자에게도 연금 수령을 허용하는 특별 규정도 있다. 산업·직종·직능별 노동조합마다 제각각 막강한 단체협상력을 기반으로 무려 총 42개 층위에 걸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연금 수혜 구조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헬레니즘문화와 동방문화가 흡수·융합된 중세 동로마제국의 비잔틴문화처럼 복잡다단해, ‘비잔틴식 연금’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이번 개혁안은 각자 본인의 연금보험료 납부액(포인트)을 기반으로 비례 지급하는 단일 연금시스템으로 통합·혁파하겠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더 공정하고 투명하며, 여성과 저소득층을 위한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속내는 공공부문의 ‘조기 은퇴 후 연금 수령’을 유인해온 복잡한 체제를 끝장내겠다는 심산이다. 이에 맞서 노조들은 “더 오래 일하게 하고 연금은 덜 주겠다는, 그동안 우리가 어렵게 얻어낸 연금급여 수혜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연금 전액 수령이 보장되는 ‘중심축’ 나이가 64살로 높아지기 때문에 수백만 노동자에게 법정 은퇴연령(62살)을 넘어서까지 일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중대 국면은 코앞에 다가온 파리의 성탄절이다. 노조와 마크롱 대통령 둘 다 성탄절을 고비로 상대방이 먼저 끝내 굴복하고 말 것이라고 믿는 모습이다. 프랑스국영철도(SNCF)는 오는 25일 성탄절에 철도를 정상 운행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경고했다. 파업 대오 선봉에 서 있는, 철도노조를 주축으로 한 강경좌파 노동총동맹(CGT)의 파업 조직가들은 1995년 성탄절 직전의 연금파업 ‘승리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당시 3주에 걸쳐 강고하게 펼친 전철·철도 파업으로 정부의 연금개혁 조처를 폐기시킨 무용담을 재연하고 싶어 한다. 노조가 “우리는 산업 파업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성탄절 휴전은 없을 것”이라며 마크롱을 압박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되레 마크롱 대통령은 성탄절 마비까지 치달으면 파업 반대 여론이 비등해져 파업 대오가 고립되고 무력화될 것으로 내다보는 듯하다.

실제 파업 동력은 다소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온건 개혁 성향 노조로 민간 부문을 장악하고 있는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은 거리시위에는 참여하면서도 “성탄절에도 휴전은 없다”는 노동총연맹의 선언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노조의 기대보다 약한 편인 지지 여론조차도 총파업으로 성탄절까지 망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최근 <에르테엘>(RTL)방송 여론조사에서 62%가 ‘파업에 찬성한다’면서도 69%는 ‘성탄절 휴전을 원한다’고 응답한 게 단적인 사례다.

또한 지난해 10월부터 ‘불만의 겨울’ 동안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던 노란 조끼 운동과 견주면 이번 파업 지지율은 꽤 낮은 편이다. 당시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과 긴축정책으로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의 지지율은 84%(지난해 11월28일 주요 여론조사)에 이르렀다. 깜짝 놀란 마크롱 대통령이 유류세 인상을 백지화하는 등 민심 수습책을 내놓았으나 이번에는 다르다. 노란 조끼가 농어촌 서민층의 생활고에서 비롯된 요구였다면, 마크롱은 이번 파업을 힘 있는 노동자들의 ‘연금 기득권’ 저항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맞서 프랑스노동총동맹 지도자 필리프 마르티네스는 “정부의 파업대오 분열 획책에도 파업 동력은 강고하다”고 외쳤다.

시위 양상도 다르다. 이번 충돌이 거리시위보다는 ‘파업’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화·약탈이 이어지며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노란 조끼 때의 격렬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17일 열린 제3차 전국 봉기 집회에서 일부 성난 시위대가 검은 옷 차림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길가의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고 버스정류장을 박살 내기도 했다. 또 경찰을 향해 유리병을 거칠게 던지기도 했지만, 경찰은 “일부 과격 시위꾼을 빼면 평화로운 시위대”라고 평가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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