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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1 13:25 수정 : 2019.12.22 10:17

지난여름 독일 관청에서 베를린 ‘국제여성공간’(IWS) 동료들의 동성 결혼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채혜원 제공

[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⑫ 다양한 가족이 어울리는 미래 사회

지난여름 독일 관청에서 베를린 ‘국제여성공간’(IWS) 동료들의 동성 결혼식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채혜원 제공

2019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베를린 ‘국제여성공간’(IWS)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두 명이 동성결혼식을 올린 지난 여름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결혼식은 독일 관청에서 소박하게 열렸다. 주례로 참석한 관청 담당자가 성혼을 선언한 후 두 신부가 모든 하객과 포옹을 나누며 식은 마무리됐다. 결혼식이 끝나고 야외에서 부케를 던지는 이벤트를 하고,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파티가 이어졌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들의 결혼을 축복했고, 독일에서 내게 가족이자 자매나 다름없는 동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눴다.

독일에서는 2017년 6월, 동성 파트너를 ‘부부’로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결혼 허용 전에도 2001년부터 동성 파트너는 ‘생활파트너관계법’(Eingetragene Lebenspartnerschaft)에 의해 부부가 갖는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지만, 입양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법안 통과 이후에는 동성 가족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남성 동성 커플 1만6766쌍과 여성 동성 커플 1만6138쌍이 결혼식을 올렸다(2018년 말 연방통계청 기준).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일하다 보니 사무실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접한다. 약 30명에 이르는 동료 중 이성과 결혼해 사는 동료는 단 3명이며, 이 중 두 부부는 자녀가 없다. 레즈비언이 가장 많은 편으로, 이 중 한 명은 결혼했고 나머지 커플은 ‘파트너’로 함께 살고 있다. 혼자 사는 동료들도 많은데 협동조합 주택에서 여러 명과 함께 동거하나 원룸에서 혼자 지내기도 하고, 방은 각자 쓰고 친구와 부엌과 욕실만 공유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남편’이나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성별 구분이 없는 ‘파트너’로 통일해 사용한다.

지난 여름 나치 반대 집회에 참여한 게이 커플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채혜원 제공.

‘베를린 젠더 데이터 보고서(2017)’에 따르면 베를린의 1인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52%(독일 전체 41%)에 이른다. 두 집 중 한 집이 1인가구인 셈이다. 자녀가 있는 가구 중 부모가 결혼 관계에 있는 비율은 절반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 부모는 한부모(28%)이거나 파트너십(18%) 관계에 있다.

이 중 28%에 이르는 ‘한부모’는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 경우도 있지만, 결혼하지 않고 아기만 낳아 기르는 부모도 포함돼 있다. 동료 중에서도 두 명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고, 합의하에 한쪽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도시다 보니, 베를린에서는 결혼한 이성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구를 흔히 보기 어려울 정도다.

베를린에 살다가 가끔 한국 뉴스를 보면 온통 결혼한 이성 부부와 자녀 또는 남성과 여성의 연애 이야기가 넘쳐난다. 1990년대에 남녀 짝짓기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남성 연예인들은 여전히 게스트에게 이성애 기반 연애와 결혼 여부를 묻고, 결혼한 부부와 자녀 이야기로 도배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지난 16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결혼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6%) 비율보다 1인가구 비율(29.8%)이 더 높게 나타났지만 미디어는 아직도 과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전체 시민의 25%가 외국인이고 8만여명의 난민이 살고 있으며, 1인가구 비율이 52%에 이르는 도시. 사무실에는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가 더 많기도 하고, 성별을 나누는 ‘남편’이나 ‘아내’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베를린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 사회를 본다. 짐작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올 한국 사회의 미래이기도 하다.

베를린만큼은 아니어도 곧 다가올 새해는 한국에 더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 ‘미래 2020년’이 되었으면 한다.

▶채혜원: <여성신문> <우먼타임스> 등에서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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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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