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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6 20:48 수정 : 2019.12.2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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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푸틴 집권 20년
러시아 민족주의·저유가 힘입어 대권 4연임
“소련 붕괴는 지정학적 재앙…되돌리고 싶다”

시리아 내전 개입하며 적극적 팽창 가속화
중국·이란과 협력…나토 회원국 터키와 밀월

경제침체, 민주화 시위 등 국내 도전 커져
2024년 이후 ‘포스트 푸틴’ 체제에도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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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마지막 날인 1999년 12월31일, 세계는 새천년(밀레니엄) 전야의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이날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급보가 타전됐다. 알코올 중독과 부패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전격 사임하고,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잔뼈가 굵은 46살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명했다. 이듬해 3월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 푸틴은 무소불위였던 공산당의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정식으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푸틴의 시대’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열렸다.

당시만 해도 별 존재감이 없던 푸틴 대통령이 20년 뒤까지도 러시아 안팎의 실권자로 건재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옛소련 붕괴 이후 끝없이 추락하며 비틀거리던 러시아가 오늘날 ‘유라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세계 무대의 강자로 재기할 것이란 전망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블라디미르 푸틴(67)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대선에서 압도적 득표율(76.7%)로 4번째 임기(6년)를 시작했다.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군사 등 전방위적 국가 현안에 확고한 권력을 행사하는 그에게 ‘현대판 차르(러시아 황제)’나 ‘블라디미르 대제’라는 세간의 별칭은 어색하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기업인들과 환담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기득권의 야합이 찾은 스트롱맨

‘스트롱맨’ 푸틴의 등장은 러시아 기득권층의 야합이 낳은 역설이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붕괴하자 러시아는 안팎으로 권력의 공백 상태에 빠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냉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했고 미래에 역사적 격변은 없을 거란 주장이었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과거의 역사에서 새로운 권위를 찾으려 했고, 소련 시절 국가경제를 장악했던 공산당 출신의 신흥 갑부 ‘올리가르히’ 세력이 발호했다.

1999년 들어 러시아에선 눈에 띄게 혼미해진 옐친 대통령의 권력 승계 문제가 심각해졌다. 후계자 모색에 나선 옐친의 측근들은 대중 오락물의 인기 영웅에 관한 여론조사를 했다. 1위는 소련 시절 연작소설의 주인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이 나치 독일군에 심어놓은 공산주의자 스파이였다. 현실에선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시절 동독에서 별 의미 없는 직책을 맡았던 정치 신인 푸틴이 최적의 인물이었다.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그해 8월, 옐친 대통령을 보좌하던 푸틴은 총리로 전격 발탁됐다.

1990~2018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추이.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러시아는 국제 유가 고공행진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이어갔으나 최근 10년 새에는 경제성장이 부쩍 둔화하고 있다. 자료=세계은행

■ 국내 테러와 고유가가 선물한 지지도 상승

무명에 가까웠던 푸틴이 러시아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린 것은 비극적 테러 사건들이었다. 집권 초기인 2002년, 체첸 반군 40여명이 모스크바 한복판의 오페라극장에 난입해 850여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사흘째 협상이 지지부진한데다 돌발적인 사살 사건이 겹치면서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푸틴은 최정예 특수부대를 투입해 신경가스를 살포하며 무력진압을 벌였다. 인질극은 170여명이 숨지는 참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푸틴은 단호한 지도자, 러시아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4년 대선에서 푸틴은 71.9%의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하며 탄탄한 권력을 다져갔다.

2000년대 초중반 세계적인 고유가 흐름도 푸틴에겐 절묘한 행운이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대국인 러시아는 푸틴 집권 전반기인 2000~2010년 동안 해마다 5~10%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갔다. 푸틴은 올리가르히 세력에 대한 숙청을 병행하며 민심을 얻고 경제적 실권도 장악했다.

냉전에서 유라시아니즘으로

2014년 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의 무장봉기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내전에도 개입해 반군을 지원했다. 양국 정상은 5년8개월만인 지난 9일에야 독일과 프랑스의 중재로 만나 ‘2+2 정상회담’ 형식으로 평화협상의 첫 물꼬를 텄다.

2015년 9월, 푸틴은 시리아 내전에 전격 개입해 바샤르 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이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선 쿠르드 민병대를 견제하려는 터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 떨어졌고, 양국의 밀월은 깊어졌다. 지난 9월,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러시아제 에스(S)-300 방공 미사일을 도입했다.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NATO)까지 위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앞서 2014년 12월 러시아는 새로운 군사 교리를 발표하면서 “나토가 러시아의 최대 위협”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지난 21일 러시아 해군 프리키함이 터키의 보스포로스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나가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세밑인 27일부터 나흘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까운 인도양 해역에서 중국·이란과 사상 첫 3개국 해군 합동훈련을 실시한다. 모두 미국이 최대 경쟁국 또는 안보위협으로 여기는 나라들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을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달 민간 상선들의 안전 항행을 명분으로 발족한 다국적 군사동맹인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대한 맞불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 패권에 맞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지난해 3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 현대사를 바꿀 수만 있다면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시절의 향수에 젖은 세대에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말이었다. 앞서 2005년 4월, 푸틴은 대국민 연설에서 “소련의 붕괴는 금세기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 푸틴은 이 연설에서, 러시아의 자유와 민주주의 증진, 경제 개발 가속화 방침 등도 밝혔다. 푸틴의 이런 인식은 안으로는 권력 강화와 경제 활성화 정책으로, 밖으로는 군사·외교·안보 분야의 적극적인 개입과 팽창 전략으로 구체화되어 왔다.

러시아는 2015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옛소련 구성국들을 주축으로 창설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적극 확대하려 한다. 유럽연합(EU)과 비슷한 관세동맹과 단일 시장 형성을 내세우지만,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야권 지도자인 류보피 소볼 변호사(가운데)가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려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경제난·민주화 시위…커지는 국내 도전

푸틴은 집권 기간 내내 나라 안팎의 비판 세력에 대한 단호한 숙청과 견제도 병행했다. 그러나 푸틴의 절대 권력은 국내에서도 도전받고 있다.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 반대 세력을 용인하지 않는 통치 행태, 극심한 빈부 격차와 경제난, 권력층 부패에 대한 불만은 누구보다 서구적 가치관에 민감한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여름 모스크바에선 시의회 선거에 야권 후보들의 출마를 선관위가 봉쇄한 것에 항의하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거셌다. 앞서 2017년 3월 러시아 주요 도시 99곳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진 ‘반부패 시위’에선 “푸틴 없는 러시아”라는 구호도 터져나왔다.

2014년 들어 국제 유가 폭락과 저유가 장기화는 러시아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도 러시아의 숨통을 죈다. 러시아는 유럽과 중국으로 가는 가스관 건설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경제협력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함께 대통령 직속 전략개발 및 국가프로젝트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크렘린궁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포스트 푸틴’ 시대의 전망

푸틴의 대통령 임기는 2024년까지다. 민주 선거에서 확고한 지지율로 25년을 집권하는 진기록이다. 그 이후 푸틴의 행보는 큰 관심거리다. 러시아의 현행 헌법은 “동일 인물이 2기 넘게 연속(more than two terms running) 러시아 연방 대통령에 선출될 수 없다”(제81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중임’까지만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이 조항 때문에, 푸틴은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일단 실세 총리로 물러났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복귀해 현재 2연임을 하고 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4년 넘게 남은 시점에서 ‘포스트 푸틴’을 말하기엔 이르다. 현실은 불투명하고 전망은 엇갈린다. 그러나 2024년 이후에도 푸틴이 어떤 식으로든 권력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다. 푸틴은 지난 19일 연례 송년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규정한 헌법의) 이 조항이 일부 정치학자들과 공인(공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아마 삭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례 연말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스푸트니크 뉴스 동영상 갈무리

<모스크바 타임스>는 지난 20일 “푸틴은 헌법을 개정해 권력을 유지하려 할까?”라는 제목으로 전문가들의 전망을 보도했다. 러시아 민간 싱크탱크인 카네기모스크바센터의 테탸나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현 시점에서 개헌은 불가피하다”며 “푸틴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려면 연임 규정이 개정돼야 하고, 퇴임한다면 다른 방식의 권력구조의 창설을 제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유럽대학교의 그리고리 골로소프 교수(정치학)는 “2024년 대선에서 푸틴이 (자신의 수족인)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월 <프랑스 24> 방송이 보도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조금 더 뚜렷하게 대조된다. 러시아의 정치분석가 콘스탄틴 칼라체프는 “현재 푸틴의 지지율은 이전과 다르다. 전에는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을 뿐 아니라 숭배했다. 그러나 지금 푸틴의 인기는 ‘대안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대체 인물이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또 다른 정치분석가 그레고리 봅트는 “푸틴은 ‘역사적 임무의 수행’이라는 과제를 자임하고 있다”며 “(그의 퇴임 후에는) 국가를 지휘하는 일종의 집단(통치)기구가 창설되고, 푸틴은 항상 그 수장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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