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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1 14:28 수정 : 2020.01.01 02:40

1995년 10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던 중 폭소를 터뜨리고 있다. 출처 flickr

1995년 영국 국방장관이 총리에 제안
“소련 붕괴 뒤 러시아, ‘NATO 확장’ 우려
…준회원국 지위 주어 점진적 융합 기대”
영 전략회의에서 회의론 많아 실행 불발

2004년 러-나토 위원회로 뒤늦게 현실화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종식

1995년 10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던 중 폭소를 터뜨리고 있다. 출처 flickr

옛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진 직후 러시아가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준회원국이 될 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1995년 당시 영국 국방장관이었던 맬컴 리프킨드가 존 메이저 총리(보수당)가 주재하는 전략회의에 제출한 국가 기밀문서로 확인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31일 보도했다. 기밀해제로 가디언이 입수해 보도한 문서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오명을 떨쳤던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음주벽과 실수담, 이에 대해 측근들과 주변국이 우려한 정황도 함께 담겼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 해체로 반세기에 걸친 동서 냉전이 막을 내렸다. 소련은 뿔뿔이 해체됐고 러시아의 국경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러시아는 그 빈 공백을 틈타 나토가 옛 소비에트 연방국들이 있는 동쪽으로 급속히 팽창할 가능성을 의심하며 두려워했다. 설상가상 옐친은 알코올 중독과 악화된 건강으로 혼미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 외교부는 ‘옐친 사망시 비상 대책’이라는 문건에 “옐친은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58살)보다 6살이나 많으며, 최근 석 달 반 사이에만 두 차례의 심장발작 상태를 겪었다”고 썼다. 영국 총리는 옐친의 갑작스런 사망 사태에 대비해 조의문까지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안팎의 안보 위기를 맞은 러시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토 준회원국 지위를 부여하자는 영국의 제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맬컴 리프킨드 전 영국 국방장관이 2012년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컨퍼런스에 참석한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리프킨드 전 국방장관은 10쪽짜리 제안서에서 “나토에 준회원국 지위를 신설하는 것이 해결책일 수 있다”며 “준회원국은 집단 방위를 천명한 나토 협약 5조(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의 적용을 받을 수 없고, 나토의 자문기구인 국제군사참모회의(IMS)에 참여할 수 없으며, 거부권도 행사할 수 없으므로, 나토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나토 안에서 공식 지위를 갖고 각급 회의에 참석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나토의) 정책과 독트린과 집행에 점진적으로 융합할 수 있도록 장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랜 냉전에 따른 뿌리 깊은 상호불신이 걸림돌이었다. 리프킨드 전 국방장관은 “옐친(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러시아 내부의 민주주의자들과 친서방 세력이 방어적인 데다, 개혁주의자들조차도 나토의 확장에는 적대적”이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리프킨드 전 국방장관은 “러시아의 나토 준회원국 지위는 적대감이나 보복에 대한 우려가 없이 (러시아가) 나토의 확장을 수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며, 특히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의 신생 독립국들과 나토의 관계를 (러시아가) 신뢰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영국 외교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국방부의 구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나토와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협약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런 관계가 언젠가 러시아가 자신도 나토 동맹의 일원의 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에 근거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존 메이저 총리 주재 전략회의에 앞서 제출된 참모진의 공식 회의 문건에도 비슷한 우려가 담겼다. “우리가 나토 확장의 대가로 러시아에 어떤 종류의 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가? (…) 만일 러시아 대표단이 나토의 모든 회의에 참석한다면, 나토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리가 우크라이나 또는 벨라루스의 독립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리프킨드 전 국방장관은 “우리는 러시아를 서구 사회의 더 정상적인 일원으로 만들고, 옐친이 러시아를 더 정상적인 유럽 국가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회의 참석자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리프킨드의 구상은 당시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2002년 나토에 ‘나토-러시아 위원회’가 설치되고 러시아가 사실상 나토의 회의들에 참석하는 등 사실상 준회원국 지위를 얻는 것으로 뒤늦게 실혔됐다. 리프킨드는 <가디언>에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매우 협조적이었고, 서방과 가까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며 “슬프게도, 푸틴이 (2014년에)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나토와 러시아의 협력 관계도 끝났다”고 돌이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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