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여러분이 지금 제 말씀을 들으면 무척 마음이 아프시고, 집에 갈 때까지 발걸음이 무거우실 겁니다. 집에 돌아가 한두 시간 마음이 무겁겠지만 좀 지나면 제 이야기를 잊어버리실 거예요.”
길원옥 할머니가 2010년 독일 베를린 알렉산더광장에서 열린 평화페스티벌 연단에 올라 단번에 좌중을 휘어잡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경험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2008년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말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던 길 할머니였다.
한반도 관련 인권과 평화 운동을 하는 독일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 한정화(57) 대표는 “학교도 못 다니고 성경책으로 한글을 뗐다던 80살 할머니가 수줍은 생존자에서 당당한 인권운동가로 변한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을 의식한 듯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할머니들을 앵벌이시켰다는 식으로 훼손되면 안 된다”며 <한겨레> 독자들과 자신의 기억을 나누려 한 이유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고, 할머니들이 피해자나 생존자를 넘어 인권운동가로 거듭난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나라 밖에도 있다. 최근 베를린 모아비트 크비초슈트라세의 사무실에서 만난 한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한 대표는 2012년 이수산 할머니가 쾰른 민속박물관 개관 행사에서 증언할 때의 감동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가 한국어로 담대하게 연설을 시작하자, 한 대표가 독일어 통역을 하기도 전에 수백 명의 독일 청중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쳤다. 한 대표는 “언어도 필요 없이 모두가 다 알고 느낀다는 걸 목격했다”며 “사명감으로 온 힘을 다한 할머니의 호소력이 독일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수용소에 위안소를 뒀다. 하지만 프랑스나 폴란드 등 유럽의 피해 여성들은 ‘배신자’라는 오명을 쓴 채 자국민에게 머리를 깎이는 수모를 당하고 사회에서 배제당했다. 독일 정부가 2000년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꾸려 나치 시절 강제 노역자 167만명에게 43억7천만 유로(약 5조4천억원)를 배상했으나, 많은 피해 여성들이 수치심 탓에 배상 신청을 하지 않았을 정도다. 한국의 정의연처럼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선 인권단체도 없었다.
한 대표는 “독일에선 성폭력 생존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면 할머니들한테 굉장히 고마워한다”며 “독일인들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일 사회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단 한 명의 여성이라도 그 이야기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운동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도 ‘위안부’ 운영
‘배신자 오명’ ‘수치심’ 등 여러 이유로
피해 해결 나선 유럽 시민단체 없어
“할머니들 자기 이야기에 큰 용기 받아”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인권운동 ‘앵벌이 폄훼’ 안타까워” 한 대표는 1990년대 초 석사논문을 쓰려고 기지촌 여성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다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위안부’ 할머니가 독일을 방문하면 통·번역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2008년 코리아협의회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었다가 2012년부터는 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코리아협의회는 <제3세계와 2차 대전>이라는 제목의 순회 전시를 시작했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후원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후손들의 화해를 상징하는 기획이었다. 코리아협의회는 이 전시에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와 ‘위안부’ 할머니, 대만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쓰카사가 ‘위안부’ 사진을 전시하고 한 대표는 강연을 맡았다.
2010년부터 3년간, 이 프로젝트를 통해 30여개 도시를 돌며 ‘위안부’를 주제로 강연, 워크숍, 전시를 열었다. 과거 청산에 관심이 있는 독일 전역의 시민단체, 대학, 고등학교를 방문해 독일 시민들을 만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프로젝트가 끝난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지자체에서 강연과 전시 요청이 들어온다.
한 대표는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생존자 할머니들이 수요시위를 하고 인권운동가로 거듭나는 모습이 독일 사회에 감명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순회강연을 했던 작은 대학도시 메팅겐에서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강연이 끝나고 한 독일 여학생이 다가와 울면서 고맙다고 했어요. 자기는 가정 내 성폭력을 당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기 마음에는 증오가 득시글거리고 견딜 수 없는데, 할머니들 마음엔 증오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어요.”
코리아협의회 전시장 겸 사무실로 쓰이는 공간엔 ‘위안부’ 할머니 사진과 할머니를 그린 그림들, 소녀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지난 3월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독일 청소년에게 ‘위안부’ 역사를 알리는 교육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재개할 예정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한정화 독일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독일 청소년들이 만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작품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주연 통신원 제공
‘배신자 오명’ ‘수치심’ 등 여러 이유로
피해 해결 나선 유럽 시민단체 없어
“할머니들 자기 이야기에 큰 용기 받아”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인권운동 ‘앵벌이 폄훼’ 안타까워” 한 대표는 1990년대 초 석사논문을 쓰려고 기지촌 여성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다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위안부’ 할머니가 독일을 방문하면 통·번역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2008년 코리아협의회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었다가 2012년부터는 대표를 맡고 있다. 2009년 코리아협의회는 <제3세계와 2차 대전>이라는 제목의 순회 전시를 시작했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후원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후손들의 화해를 상징하는 기획이었다. 코리아협의회는 이 전시에 윤미향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와 ‘위안부’ 할머니, 대만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쓰카사가 ‘위안부’ 사진을 전시하고 한 대표는 강연을 맡았다.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사무실. 한주연 통신원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