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관련 소송 폭발적 증가
국가 고유 정책마저도 흔들
국가 고유 정책마저도 흔들
몇년 전 미국의 메기 양식 어민들은 베트남산 메기가 자국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 변호사를 고용해 베트남산 메기에 메기(catfish)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도록 했다. 미국산 메기와 같은 목(目)에 속하지만 과(科)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베트남산 메기는 베트남어로 메기인 ‘바사’라는 이름으로 수입됐다.
이런 ‘잔꾀’에도 베트남산이 날개돋힌 듯 팔리자 이 변호사들은 전략을 바꿨다. 베트남산 메기가 부당하게 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어, 수입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변호사들은 베트남산 메기가 미국산과 같은 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점점 더 많은 무역관련 사안들이 협상이 아닌 소송과 중재 재판에 의존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신문은 “WTO 분쟁해결기구나,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해결 기구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와 같은 사법·중재 기구에 제소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Icsid와, 유사 성격의 투자자-국가 소송 재판소에 제소된 사건들은 한 국가나 투자자가 다른 정부를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역에서 어떻게 강압적으로 손목을 비틀 수 있는 지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국의 정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상에도 핵심 쟁점이다. 미국은 전면적 시행을, 한국은 부동산·조세 등 일부 공공정책 영역에서의 예외 인정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벡텔사는 볼리비아 정부가 상수도 공급 계약을 취소했다는 이유로 Icsid에 5천만달러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탈리아 광업회사 3곳은 현재 남아공이 자국의 ‘흑인 경제력 권한부여법’상의 충분한 보상없이 채광권을 박탈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브라질은 이 소송을 통해 미국 의회가 기업세법을 바꾸고 면화 재배 농부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도록 했다.
이런 소송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점차 국제무역에서 중요성을 띠어 가고 있는 양자무역조약(BITs) 조항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판결의 대부분이 항소 절차가 없는 구속력을 가진 상업적 중재재판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으며 보통 재판과는 달리 청문회가 비밀스럽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투자자 재산권은 정당한 사유 없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등과 같은 모호한 무역조약상의 조항도 소송을 부추긴다.
워싱턴의 무역전문 변호사인 게리 홀릭은 “다국적 회사의 본국이 특정 투자국과 양자투자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협정체결국에 자회사를 세우는 방법도 있다”면서 “양자간의 투자조약은 서명국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투자자 국가 소송제는 세계시장에서 체면을 유지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개발도상국에 의해 종종 도입된다면서 그 예로 남아공을 들었다.
신문은 또 WTO 분쟁해결기구의 배심원들이 무역담당 관료와 외교관들로 채워지면서 ‘부업’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협상하고 다음 날에는 그 의미에 대해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분쟁을 다루는 국제공법은 영미법이 아니라 로마법을 따르고 있어 배심원들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6S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무역분쟁을 다루는 국제공법은 영미법이 아니라 로마법을 따르고 있어 배심원들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6S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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