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소송제 논란일듯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가 지지부진하면서 점점 더 많은 통상 분쟁이 소송과 중재 재판에 의존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신문은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나, 외국인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해결 기구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와 같은 사법·중재 기구에 제소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또 이와 유사한 성격의 투자자-국가 소송 재판소에 제소된 사건들은 어떻게 한 국가나 투자자가 다른 정부의 손목을 강압적으로 비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국 정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 사항이다. 미국은 전면적 시행을, 한국은 부동산·조세 등 일부 공공정책 영역에서의 예외 인정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벡텔사는 볼리비아 정부가 상수도 공급 계약을 취소했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5천만달러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탈리아 광업회사 세 곳은 현재 남아공이 자국의 ‘흑인 경제력 권한부여법’상의 충분한 보상 없이 채광권을 박탈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또 유럽연합과 브라질은 소송을 통해 미국 의회가 기업세법을 바꾸고 면화 재배 농가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도록 했다.
문제는 이런 판결의 대부분이 항소 절차가 없는 구속력을 가진 상업적 중재재판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으며, 보통 재판과는 달리 청문회가 비밀스럽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투자자 재산권은 정당한 사유 없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모호한 조약상의 조항도 소송을 부추긴다. 워싱턴의 통상전문 변호사인 게리 홀릭은 “다국적 회사의 본국이 특정 투자국과 양자 투자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협정 체결국에 자회사를 세우는 방법도 있다”며 “양자간의 투자협정은 서명국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세계시장에서 체면을 유지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개발도상국들이 종종 도입한다며 그 예로 남아공을 들었다.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의 중재재판관들이 통상 관료와 외교관들로 채워지면서 ‘부업’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루는 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협상하고 다음날엔 그 조항의 의미를 판단하는 것도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