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러, 인수 9년만에 사모펀드에 넘기기로
미국 3위의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가 자산운용사인 서버러스에 팔린다. 독일 다임러벤츠그룹이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지 9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매각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부터 본격 협상을 벌여 온 다임러크라이슬러그룹은 14일 크라이슬러 지분 80.1%를 74억달러(약 6조8천억원)에 서버러스에 넘기기로 했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보도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그룹은 성명에서 크라이슬러 지분 19.9%는 유지하기로 했다며, 애초의 관측과는 달리 이제까지의 퇴직금·의료보장 부담은 자사가 계속 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임러는 그룹 이름에서 ‘크라이슬러’를 뗄 것으로 보인다.
다임러는 1998년 자사의 메르세데스-벤츠 상표에 지프와 미니밴이 접목되면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360억달러에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듬해 최고실적을 낸 크라이슬러는 일본 업체들의 도전에 직면해 지난해 15억달러의 적자를 보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해 1분기에만 11억5천만달러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크라이슬러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999년 16%에서 지난해 12.6%로 떨어져 도요타에도 뒤진 4위에 그치고, 직원의 16%인 1만3천명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번 거래는 사모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가 미국의 대표산업인 자동차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버러스는 지난해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지엠)의 금융자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한편, 1980년대에 파산 위기에 몰린 크라이슬러를 부활시켜 재계 영웅으로 떠올랐던 리 아이아코카는 최근 펴낸 <지도자들은 모두 어디갔나>라는 책에서, 93년 지엠 출신의 로버트 이튼한테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려준 것이 “내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밝혔다. 아이아코카는 이튼이 경영하지 않았다면 크라이슬러는 “여전히 강하고 이익을 내는” 업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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