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통화의 가치 상승
외국인, 파생 상품·단기 상품 등에 투자제한 조처
약달러 충격에 APEC 일부국가도 통화통제 검토
약달러 충격에 APEC 일부국가도 통화통제 검토
지난해 대만에서 170억달러(약 19조원)가 섬 밖으로 빠져나갔다. 대만도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대만은 흔들리는 통화를 방어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넘쳐나는 달러가 대만의 새 두통거리로 떠올랐다. 급기야 외환통제란 ‘극약 처방’을 내놨다.
대만의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10일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의 30% 이상을 국채와 파생상품, 단기 금융상품, 단기 투자신탁상품에 투자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정기예금에 돈을 넣고서 이자와 환율 차이에서 나오는 이익을 노리는 투자 행위를 제한했다. 대만의 정기예금에 정박해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은 155억달러에 이른다.
자본시장의 자유와 개방에 반한다는 이유로 기피시됐던 외환 통제를 실시하는 신흥국들이 늘고 있다. 달러에 견줘 가치가 급등하고 있는 통화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신흥국들의 통화 강세는 곧 수출에서 가격경쟁력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외환 통제는 또 환투기 방지, 자산 가격의 거품 차단 등 시장의 안정을 위한 필요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외환의 유출·입 통제는 외환시장 감독기관의 구두 개입이나 외환 매각보다 훨씬 과감한 조처들이다.
대만에 앞서 브라질은 지난달 증시와 채권 등에 투자할 목적으로 들어온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자의 투자자금에 2%의 세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일종의 ‘토빈세’다. 팔짱을 끼고 있기엔 외환시장과 자산시장이 너무 달아올랐다고 본 것이다. 올해 브라질의 레알화는 달러에 견줘 약 36%, 증시는 80%나 급등했다.
<블룸버그 뉴스>는 12일 “중국과는 별도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의 일부 나라들도 자국 통화에 대한 통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중국은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위안화 가치를 달러에 연동시킨 페그제를 시행해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타이, 칠레의 중앙은행들도 빠르게 절상되는 통화의 움직임에 사이렌을 울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중앙은행은 11일 루블화 가치의 급등을 우려하면서 외환시장에서 7억달러를 내다팔았다.
달러가 밀려들면서 신흥시장은 통화가치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의 하락과 자산 거품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사실상 ‘제로금리’(0~0.25%)를 유지하면서,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을 내다팔고 위험이 따르지만 수익률이 더 높은 신흥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브라질의 레알화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 한국의 원화, 러시아의 루블화는 지난 4월 이후 달러 대비 25~40% 급등했다. 이 기간에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를 기준으로 한 선진국 증시는 평균 약 60% 올랐지만, 신흥국 증시는 100% 넘게 상승했다.
신흥시장이 너무 달아오르자,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대변해온 세계은행(WB)마저 최근 “변동성이 큰 외부 자금의 막대한 유입에서 파생되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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