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비 대출 10억달러 규모 추산
9·11테러 현장에서 구조와 철거 작업을 한 경찰관 등 9000여명이 유해한 환경 때문에 몸이 상했다며 뉴욕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내 지난 6월 7억1250만달러(약 8023억원)를 지급하라는 조정 결정을 받아냈다. 이 집단소송 뒤에서 짭짤한 장사를 한 이는 시티그룹에서 돈을 빌려 로펌에 대준 ‘카운셀파이낸셜’이라는 업체로, 3500만달러를 대출해주고 1100만달러를 벌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16일 ‘소송 금융’의 성공적 사례로 9·11 손해배상 사건을 꼽으며, 미국 헤지펀드들이 소송을 유망한 투자 분야로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에 일부 투자자가 개인 소송에 돈을 대면서 싹이 튼 소송의 금융산업화는 이제 집단소송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텍사스주 서머빌 주민 400여명이 침목 제조공장의 유독물질이 암을 유발했다며 낸 소송에서는 뉴욕의 한 헤지펀드가 350만달러를 대부해줬다. 현재 소송에 투입된 헤지펀드 자금이 1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헤지펀드들의 참여 배경에는 비싼 소송 수행비용이 있다. 연방사법센터는 지난해 민사소송의 평균 비용이 1만5000달러라고 밝혔다. 전문가 자문이 중요한 의료소송에서는 10만달러가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리 15%를 웃도는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좋다. 이런 이유로 2억달러를 투자한 카운셀파이낸셜 등 10여개 업체가 성업중이고, 대형 투자은행들도 이 분야에 눈길을 주고 있다. 일부는 변호사를 고용해 승소 가능성을 따져 투자 결정을 내리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원고들을 적극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로펌들이 이자비용을 원고들에게 지우거나,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9·11 사건에서도 연리 18%가 적용된 이자 1100만달러 중 610만달러가 원고들에게 청구돼 반발이 일었고, 법원이 나서 이를 취소시켰다. 그러나 ‘헤지펀드가 정의를 금융상품화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 소송 투자업체 창업자는 “돈이 없으면 소송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면 정의도 위축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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