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9 15:10
수정 : 2019.07.09 20:56
|
독일 도이체방크가 1만8천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발표한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도이체방크 뉴욕 본부에서 직원들이 ‘해고 통지서’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흰 봉투를 들고 출입문을 나서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최대 규모의 글로벌 은행 인원 감축
|
독일 도이체방크가 1만8천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발표한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도이체방크 뉴욕 본부에서 직원들이 ‘해고 통지서’가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흰 봉투를 들고 출입문을 나서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
큼지막한 흰 (퇴사)봉투, 울먹이는 눈, 푹 고개 숙인 얼굴, 그리고 한 뭉치의 상자와 박스…
지난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사에서 도이체방크가 1만8천명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발표한 직후 런던, 뉴욕, 도쿄의 도이체방크 사무실마다 졸지에 해고당해 마지막으로 떠나는 직원들의 ‘숨길 수 없는 표정’이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8일 전했다.
지난 7일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는 9만2천명 정도인 글로벌 인력을 2022년까지 7만4천명으로 20%가량 혹독하게 감원하고, 글로벌 주식 매매와 트레이딩 부문에서 철수하는 등 투자은행(IB) 부문을 대폭 축소하는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전세계 각 지사에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달라. 우리는 더 수익성 있고 날렵하고 혁신적이며 또한 유연한 조직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은행의 장기적 지속을 위해 수십년 만에 가장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번 감원은 2008년 9월 금융위기 때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2만6천명이 감원된 이래 최대 규모의 글로벌 투자은행 인원 감축이다. 도이체방크는 오는 24일 발표할 2분기 실적에서 구조조정 관련 비용지출에 따라 28억유로(약 3조6975억원)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이체방크 런던 지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에 대한 해고통지는 인사부서와의 협의 직후 이날 비번이 통고되는 ‘위험 알림’ 통지 방식으로 전달됐다. 런던 지사에서 투자 부문 매니저로 일했던 직원은 회의실에 불려간 뒤 해고통지를 받고 곧바로 책상이 치워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감원이 발표되고 8시간이 지난 뒤, 도이체방크 도쿄 지사에 근무 중인 시니어 매니저는 직원들과 짧은 회의를 갖고 “아시아 전역에 걸쳐 대부분의 자산투자운용부서는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알렸다. 도이체방크가 그동안 인력을 감축하면서 세계 도처의 지사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각 지역에 산재한 투자은행 부문마다 우울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모든 글로벌 부서가 폐쇄되는 건 아니다. 런던과 뉴욕의 대출·투자 부서는 용감하게 적자에 맞서 싸우며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 여전히 노력하기로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만 독일은 자국의 고용법상 해고 제한이 경직적이고 노조가 막강하다”며 “독일 내 소매영업점포 직원은 2021년 중반까지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 해고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사가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도이체방크 등 유럽 은행들은 오랜 저금리 및 경기 둔화, 정치적 불확실성과 싸우면서 미국 라이벌들에 안방에서 압도당했다”고 진단했다. 도이체방크는 한때 미국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줄어든 거래량과 저금리 정책 등으로 매출 부진을 겪어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20여년간 월가의 톱 순위에 진입하려고 시도해온 도이체방크가 은행 창립 150년(2020년)을 앞두고 목표 전략을 수정했다. 이제 글로벌 야망에서 퇴각하고, 대신에 유럽 안방에서 골드만삭스에 대항하는 주요 라이벌로 성장하겠다고 표방한 셈”이라고 전했다. 제이피(JP)모건의 분석가 키안 아보후세인은 “제빙의 계획은 매우 대담하고 신뢰할만하다. 다만 과연 도이체방크가 실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