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9 20:54
수정 : 2019.07.2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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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현지시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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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분쟁 협상 재개하기 전
“상당 국가 지위 박탈 내용 준비” 지시
한국, 고소득 국가 등 4개 기준 해당
“중 자극하며 실제론 탈퇴 위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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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현지시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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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중국 등을 지목해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특혜 지위’ 박탈을 요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유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으며, 개도국 지위를 문제 삼고 나선 트럼프의 심산은 미국의 WTO 탈퇴를 위한 명분 쌓기 혹은 WTO 체제 무력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재개되는 미-중 무역분쟁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이번 무역협상 책임자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지시한 ‘대통령 각서’에서 “모든 경제지표를 볼 때 중국에 대해 WTO 회원국 개도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 또 (한국을 포함한) 상당한 나라에 개도국 지위를 박탈하는 내용의 (WTO 내부)진전 사항을 90일 안에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 2월15일 ‘WTO 협정에서 개도국 우대를 이용할 수 없는 회원국’의 기준으로 4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및 가입절차를 시작한 국가 △주요 20개국 국가 △세계은행 분류상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 등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개도국 그룹 내에서도 최상위권에 있고 미국이 제시한 기준에 모두 해당하는 유일한 개도국”이라며 “이 기준을 감안할 때 개도국 지위 유지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원은 또 미국이 제시한 기준에 따를 경우 한국·터키·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 등 35개국이 개도국 우대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밝혔다.
WTO 회원국 개도국 지위는 각국이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자기선언’하는 방식이다. WTO 협정 안에서 개도국 특혜(국가별 수입관세 의무 감축률 완화) 조항은 농산물 및 비농업 공산품 시장개방에 걸쳐 약 15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다양한 양자협상에서 다른 회원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실제로 이의 제기 국가에는 우대조항을 요구하기 어렵다. 최근에 미국과 양자협상을 벌인 브라질은 향후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개도국 우대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고, 대만도 개도국 우대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반면 노르웨이는 지난 4월 미국의 개도국 분류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고 공식 반대해 향후 미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나아가, 개도국 지위의 유지 혹은 제외는 국가 전체에 획일적으로 적용되며 농산물과 공산품에 각각 별도로 적용할 수는 없다. 향후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개도국 지위에서 손떼고 나오라’고 압박하면서 농산물 양자협상에 나선다면 미국산 농산물 수입관세를 더 낮추고 국내 농업보조금도 큰폭으로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트럼프의 이번 개도국 관련 각서는 표면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성격을 띠고 있고 겉으로 공정무역과 상호호혜주의를 내세우지만 WTO 질서의 존립 자체에 파열구를 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계에서 부자나라들이 개도국 우대 지위를 주장하는 한 WTO는 ‘깨진’(broken) 상태”라고 선언했다. 27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기업연구소의 중국전문 이코노미스트인 데렉 시저스는 “WTO 체제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회원국 간 합의로 해결하기엔 매우 어려운 구조다. 이번 트럼프의 개도국 지위 언급은 중국을 자극하면서 실제로는 WTO 탈퇴 의사를 노골적으로 위협하기 위한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시니어 연구원인 차드 보운은 “미국이 언젠가 WTO 탈퇴를 결행에 옮길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확실한 건 트럼프의 이번 개도국 지위 언급이 WTO를 흔들기 위한 폭약에 불을 붙인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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