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2 20:17
수정 : 2019.10.02 20:22
WTO, 올 교역증가율 1.2% 전망
4월 전망치 2.6%에서 큰폭 낮춰
미-중 무역전쟁에 교역·제조업 ‘뒷걸음’
북미 상품교역 4.3%에서 1.5%로 폭락
‘홀로 호황’ 미 제조업지수도 빨간불
9월 47.8…10여년 만에 가장 낮아
독·영·일 등도 제조업 하락세 지속
10월 세계경제가 올해 마지막 분기에 들어서면서 미-중 무역분쟁의 파급 영향이 현실 실물경제 지표로 속속 드러나고,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교역 증가율 전망치를 성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한 1.2%로 제시해 한국 등 각국 투자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무역갈등 요인이 세계경제를 후퇴시키는 현상은 1930년대 이후 처음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무역기구는 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올해 세계 상품교역 증가율이 전년 대비 1.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 10년 새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특히 지난 4월 전망치(2.6%)에 비해 6개월 만에 또다시 대폭 낮췄다. 미-중 무역분쟁이 세계경제에 드리우고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충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별 수출증가율의 경우 북미는 올해 1.5%로 지난해(4.3%)에 비해 대폭 떨어지고, 아시아 지역도 지난해 3.8%에서 올해 1.8%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무역기구 발표가 나온 직후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러시아에서 독일·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이 위축되고 수출은 하강하고 있으며 소비자경기지수는 미끄러지는 등 일련의 경제데이터들이 뚜렷한 하강 신호를 발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고등이 확연하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1일 발표한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지난 8월 49.1에서 9월 47.8로 대폭 하락했다. 신규 주문·출하·생산·재고 등에 걸쳐 제조업 업황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로, 8월에 3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선(50.0) 밑으로 떨어진 데 이어 두 달 연속 경기 위축 신호를 보인 셈이다. 9월 지수는 12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사상 최장기 미국 경제 확장세가 시작된 2009년 6월 이후 10년여 만의 최저치다. ‘확장 종료’가 어른거리고 있는 셈이다.
독일도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최근 3년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일본 제조업경기지수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 제조기업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불확실성’으로 주요 거래처들이 영국을 이탈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독일과 유로존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6년 이래 처음으로 0%대로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 물가 하락) 유령도 엄습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국제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디플레이션 전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용평가기관 피치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브라이언 콜턴은 “미-중 무역분쟁 등 무역정책 혼란이 글로벌 성장 전망을 심각하게 변동시키고 있는 상황은 1930년대 이래 거의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세계무역의 놀라운 둔화세와 주요국의 제조업 위축세는, 그동안 나홀로 확장세를 이어온 미국 경제의 향방을 둘러싼 우려로 옮겨붙고 있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미국경제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븐 갤러거는 “미국 경제는 그동안 말해온 확장세가 아니라, 갑자기 이른바 ‘스톨 스피드’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미국 경제는 지금 기업·정부보다는 ‘소비자 엔진’ 하나로 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생산이 슬럼프에 빠져들면서 이제 소비 수요가 경제를 과연 떠받쳐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스톨 스피드는 항공기가 수평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기 위한 최소 속도로, 이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하강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블룸버그> 경제분석가 칼 리카도나는 미국 경제의 스톨 스피드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4~1.5% 근처’라고 계산하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가계소득 증가율이 둔화돼 소비가 성장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2.1%(전분기 대비 연율)로, 점차 ‘스톨 속도’에 근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유비에스(UBS)그룹 분석가들은 지금 현재 세계경제 성장률이 2.3% 지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추계했다. 지난 3분기가 시작될 때 계측한 성장률 수치에 견줘 불과 석 달 만에 거의 1%포인트 떨어졌다. 유비에스는 또 미-중 무역분쟁 와중에 주요국 제조 기반산업의 위기 징후도 세계경제 후퇴를 가져오고 있는 요인이라며 독일의 자동차판매 악화, 한국 반도체산업의 매출 둔화 등을 꼽았다. 앞으로 2년 안에 세계경제가 ‘침체’(세계총생산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에 진입할 확률이 30%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날 미국 나스닥(-1.13%)과 에스앤피500지수(-1.23%)가 크게 떨어졌고, 2일 코스피도 1.95% 급락한 2031.91로 장을 마쳤다. 세계 제조업 업황이 나빠졌다는 소식에 철강·금속(-2.7%)과 전기·전자(-2.5%)의 하락 폭이 컸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7원 오른 1206원으로 마감했다.
조계완 기자, 한광덕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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