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9년 5월9일 워싱턴에서 자신이 세운 우주로켓기업 블루 오리진의 달 착륙선 블루문을 공개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시작으로 한 선진국들의 ‘부자 증세’ 시도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부의 집중과 사회경제 양극화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격화되자, 바이든 행정부는 일련의 증세 정책을 내놓았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자본이득세 인상, 글로벌 최저법인세(법인세 하한 설정) 도입 등이다. 이에 더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이 아닌 자산에 대해 과세하는 부유세 논의도 몇년 전부터 진행중이다.
최근, 독립 탐사보도매체
<프로퍼블리카>가 미국 국세청 세무자료를 입수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등 미국의 최상위 부자 25명이 중산층 봉급생활자보다도 더 적은 세율의 세금을 내고, 4천달러의 자녀 세금공제까지 받았다고 보도했다. 최고 부자들의 이런 세금 실태는 최근 논의되는 부자 과세 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인구 3억3천만명인 미국에서 최상위 0.1%의 납세자인 17만가구가 미국 부의 20%를 장악하고 있다. 이런 부의 집중은 대공황이 발발한 1929년 이후 최고치다. 상위 1%가 미국 부의 39%를 쥐고 있다. 절대 대다수인 하위 90%는 단지 26%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는 자산과 부채를 합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상위 1%는 1920년대에 미국 부의 50% 가까이를 소유하다가, 대공황을 거치면서 완화됐다. 제 2차 세계대전 뒤 최고 소득세율이 강화되고, 1960~70년대 적극적인 분배 정책과 흑인 노동자의 임금 상승 등이 주효했다. 1978년 상위 1%의 부의 집중은 20% 초반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1980년을 전환점으로 다시 부의 집중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했던 1980년에 상위 0.1%는 미국 부의 7%를 소유했다. 레이건의 대폭적인 소득세율 감세, 중하층 임금의 정체, 자본 시장 활황을 거치면서, 2014년에는 상위 0.1%가 전체 부의 22%를 차지했다. 하위 85%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한 것이다.
이런 미국 부의 집중 실태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가브리엘 주크만 경제학 교수가 동료 교수 이매뉴얼 사에즈와 함께 미국 국세청 과세 자료를 파헤쳐 작성한
‘1913년 이후 미국에서 부의 불평등’이란 보고서에서 담겼다. 프랑스 출신인 주크만은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역사적 관점에서 파헤친 기념비적인 저서인 <21세기의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의 과세자료 분석에 참여한 제자다. 최상위층에 집중되는 부에 대한 과세 약화가 불평등을 촉진했다고 보는 그는 피케티의 지도를 받은 박사학위 논문을 보강한
<국가들의 숨겨진 부>라는 저서로 ‘최상위 부자들의 숨겨진 부를 파헤치는 탐정’이라는 평가도 얻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전 세계의 부자들은 조세회피처 등 역외 계좌에 적어도 7조6천억달러(약 8858조원)를 묻어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가구 금융자산의 8%에 해당된다. 이 자산의 80%는 정부의 과세에 벗어나, 탈루 세금이 매해 약 2천억달러(약 226조원)에 달한다. 다국적 대기업 해외 수익의 40%인 6천억달러(약 678조원)가 매년 그 돈을 번 나라에서 빠져나와 조세회피처로 이동한다.
주크만과 사에즈는 소득에만 과세하고, 자산은 세금신고에서도 제외되는 기존의 조세 정책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했다. 전 세계 부의 다수는 주택, 예술품, 은퇴연금계좌, 배당하지 않은 주식 형태로 존재하나, 이는 매각되지 않는 한 과세되지 않는다.
자산 담보 대출, 낮은 자본이득세, 조세회피처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 때 91%까지 올랐다가, 1980년대까지 70%에 달했다. 로널드 레이건 집권 8년만에 최고소득세율은 28%까지 급강하했다. 그 후,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에서는 자본이득세 인하 등 투자가들을 위한 각종 세제 혜택들을 부여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에는 최고 소득세율 및 법인세 인하에 이어, 퇴임 직전인 지난 1월5일 사모펀드 등의 조세회피를 도와주는 조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절정에 올랐다.
최상위 부자나 대기업들은 일련의 감세에 더해, 조세 회피를 가능케 하는 허점들을 이용하고 있다.
첫째, 과세되지 않는 자산을 이용한 대출이다. 이는 <프로퍼블리카>가 보도한 미 최상위 부자 25명이 4010억달러(약 453조원)에 달하는 그들의 재산에 대해 실효 세율이 3.4%에 그치게 하는 비결이다. 이들의 재산 증식은 주식 등 자산 가격의 상승에서 발생하는데, 이 자산은 매각하지 않는 이상 과세되지 않는다. 이들 최상위 부자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용하고, 이자 비용이나 원금 상환 등을 세금공제를 받는다. 아마존의 베이조스 등이 이런 방법으로 연방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동안 자산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둘째, 소득세 보다 낮은 자본이득세 활용이다. 미국에서 소득은 37%까지 과세되는 반면, 자본이득세는 20%다. 사모펀드 등 자본시장에서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사모펀드는 투자금을 받으면 보통 2%의 수수료에다, 나중에 발생하는 이득의 20%를 ‘성과보수’로 받는다.
사모펀드 매니저들이 받는 수수료나 성과보수는 성격상 근로 소득인데도, 미국 국세청은 오래 전부터 성과보수는 자본이득으로 간주해줬다. 성과보수는 최고 소득세율 37%가 아니라 자본이득세 20%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향후 10년 동안 약 1300억달러(약 147조원)의 세금 회피가 발생한다고
빅터 플레이셔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뉴욕 타임스>에 지적했다.
수수료 역시 투자한 파트너에 미래 이익의 몫으로 돌려받는 형식을 취한다. 이럴 경우, 20%의 자본이득세를 적용받는다. 이른바 ‘수수료 면제’ 형식이다. 4조5천억달러(약 5080조원) 규모의 사모펀드 업계에서 경영진은 보통 수천만~수억달러의 연봉을 받지만, 최고 수억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피해나간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셋째, 조세회피처를 활용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저작권료를 받는 자회사
‘마이크로소프트 라운드 아일랜드 원’은 2020년 회계년도에 무려 3147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나, 법인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 회사는 아일랜드에 주소를 둔 ‘페이퍼 컴퍼니’인데, 카리브 해의 버뮤다에 ‘납세자’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버뮤다에서는 법인세를 징수하지 않는다. 이 수익은 아일랜드 국내총생산(GDP)인 4330억달러(약 489조원)의 3분의2에 해당한다.
지난 2016년 4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회피처인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다. 유출된 1150만 건의 기록에는 전 세계 최소 128명의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숨겨진 금융 거래의 상세 내역도 포함됐다. <포브스>의 세계 500대 부자 목록에 오른 29명이 포함됐다. 거대 금융사인 유비시(UBC) 등이 만든 수백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포함해, 은행들은 1만5300개 이상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저크먼에 따르면,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절반을 다섯개 조세회피처인 아일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버뮤다 등 카리브해 섬, 스위스로 이동시킨다.
‘파나마 페이퍼스’나 <프로퍼블리카>의 보도는 조세 회피나 탈루가 이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인물이나 세력, 심지어 조세 제도를 규율하는 당국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조세 회피와 탈루를 막는 개혁은 지난하기만 하다.
주크만 등의 2016년 보고서의 문제의식은 미국에서 부유세 논의에 불을 붙였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이 보고서에 근거해 부유세를 제안했다. 그가 2021년 발의한 ‘극부유층 과세법안’은 5천만(약 565억원)달러에서 10억달러에 이르는 개인 순자산에 대해 연간 2%, 10억달러를 넘어서면 매년 3%의 세금을 규정했다. 이 부유세로 향후 10년 동안 2조8천억달러(약 3165조원)의 추가 세수가 기대된다. 워런 의원은 또 1억달러 이상의 기업 이익에 세율을 강화해, 향후 10년 동안 1조달러(약 1130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억만장자들에게 부동산세를 최고 77%까지 과세하자고 제안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은 1천만달러(약 113억원) 이상 소득에 70% 세금을 주장했다.
이런 논의는 결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 일련의 증세 조처로 이어졌다. 부부 합산 50만달러(약 5억6천만원), 개인 45만달러 이상 소득에 적용되는 최고 소득세율은 37%에서 39.6%로, 대기업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21%에서 28%로 올리는 증세안을 발표했다. 또, 보유한 자산의 자본이득이 100만달러(약 11억3천만원) 이상인 개인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20%에서 39.6%로 대폭 올렸다. 바이든 정부는 다국적 대기업들이 조세회피처로 이익을 빼돌리는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글로벌 최저법인세도 제안해, 주요 7개국(G7) 사이에서 15%의 세율이 합의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증세 및 과세 조처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의 감세 조처를 기껏해야 되돌리는 수준이지만,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에 봉착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글로벌 최저법인세에 대해 거부권(비토) 행사를 벼르고 있어, 국제적인 약속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사모펀드가 ‘수수료 면제’ 방식을 통한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시도했으나, 이는 오히려 ‘수수료 면제’를 결과적으로 합법화하는 조처로 귀결됐다.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850만달러(약 96억원)의 로비 자금을 살포하는 등 자본시장의 전방위적인 로비와 압력 때문이었다. 더욱이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 때인 2008~2018년까지 국세청 인력이 3분의 1이나 줄어서, 로펌과 사모펀드들의 조세 회피는 더욱 수월해졌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 “월가 투자가들, 그리고 나같은 사람에게 좋지만,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불공정한, 성과보수 세금공제 등 조세 구멍들을 제거하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취임 직후 2017년에 레이건 이후 사상 최대 부자감세로 귀결됐다. 1조5천억달러(약 1695조원) 규모의 감세안으로 자본업계는 향후 10년 동안 추가로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의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고 매킨지가 분석했다. 퇴임 직전에는 사모펀드 등의 성과보수에 우대세율 적용을 더욱 손쉽게 하도록 조세법 시행령이 바뀌었다.
부시, 오바마,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장관인 제이컵 루와 티머시 가이트너, 스티븐 므누신은 모두 자본시장 출신인데다 퇴임 이후 사모펀드의 경영자로 발탁됐다. 그들이 재직 시절 약화시킨 세법의 최대 수혜 회사들이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부자 증세 및 조세 개혁은 다를 수 있을까?
<프로퍼블리카> 보도가 나오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기업과 개인들이 그들의 공정한 몫을 더 내도록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증세를 재확인했다. 상원 재무위원장 론 와이든 민주당 의원은 “미국인들은 억만장자들이 이런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억만장자들은 매해 공정한 몫을 지불해야만 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본시장의 성과보수 조세 구멍도 종결시키겠다는 의지다.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33쪽짜리 민주당 조세개혁안을 보면, 소득 100만달러 이상과 자산 1천만달러 이상의 납세자는 자산에 대해 매해 세금을 내도록 추진하고 있다. 주식의 상속 등 이전에 대해서도 매각으로 간주하고, 상응하는 세금을 매기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부동산 상속세도 매입 당시가 아니라 상속 때의 가격을 기준으로 매기는 방안이다.
부유세 발의자인 워런 상원의원은 “주식에 대한 과세는 모든 미국인에게 부담을 공평하게 하는 부유세의 시작”이라며 “거기서부터 우리는 부동산, 제트비행기, 요트, 미술품 등 다른 형태의 자산에 대한 과세를 포함할 수 있다”고 환영했다.
영국에서도 부유세 도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유세위원회는 100만파운드(약 15억6천만원) 이상의 가구에게 1회성의 1% 부유세 도입을 정부에 건의했다. 5년에 걸쳐 낼 수도 있는 이 부유세로 2600억파운드(약 408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영국의 의료보험과 사회복지 1년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액수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소득세 인상에 더해 자본이득세 인상을 시사했다가 주춤한 상태다. 영국에서도 최고 소득세율은 45%인데 비해, 자본이득세는 주식의 경우 20%, 부동산은 28%다. 부유세 위원회의 아룬 어드버니 워릭대 교수는 “영국에는 1천만파운드(약 157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이 2만2천명으로, 인구의 0.05%에 불과하다”며 이들부터 더 세금을 내게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자산 과세는 문명 종말” Vs “격차 대처 않으면 혁명”
미국에서 공화당은 ‘이익이 발생하지 않은 자산에 대한 과세는 조세 체계를 완전히 흔드는 처사’라며, 결사 항전 태세다. 와이든 상원 재무위원장은 “사모펀드는 ‘일반적인 소득세율로 매년 세금을 내야한다면 서구 문명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저항의 강도를 전했다.
증세보다는 다른 처방의 제안도 있다. 사에즈 교수와 부동산세를 같이 연구한 적이 있는 보이치에흐 코프저크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을 증세의 근거로 삼는 것은 사후 정당화”라며 혁신적인 기업인들이 사업체 주도권을 잃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5개의 유럽 국가들이 부유세를 시도했다가 최근 프랑스를 포함해 11개국이 폐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에 반독점법이나 선거자금법을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현재 약 2억원 이상의 자산에 0.85%의 세율의 세금을 50만명의 납세자가 내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지난 4월 자신의 에스엔에스 계정에서 확대되는 미국의 경제 격차는
“국가 비상사태”라며 이를 대처하지 않으면, 일종의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디즈니 가문의 상속자인 에비게일 디즈니 등 전 세계 유명 부호 200명이 가입한
‘애국적 백만장자들’은 전 세계 정부에게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실질적으로, 영구적으로 세금을 올리라”라며 부자 증세 운동을 펼치고 있다. 블랙록의 전 경영이사인 모리스 펄 ‘애국적 백만장자들’ 의장은 “부자들은 기본적으로 세금을 내거나, 안 내거나 선택할 수 있다”며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이상의 부에 3% 과세는 우리가 추구하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늘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퇴행을 넘어서야 한다”며 “우리는 부자에게 과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