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불안감이 약 8년 만에 가장 심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등 물가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주유소에 5달러에 가까운 고급 휘발유 가격표가 걸려 있다.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전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물가 상승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식량 가격 급등으로 전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와중에 미국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불안감이 약 8년 만에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 등에 따른 세계화 퇴조와 보호무역 추세가 앞으로도 꾸준히 물가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은 6월 소비자 기대지수 조사 결과, 미국 소비자들이 예상하는 앞으로 12개월간의 물가상승률이 4.8%로 집계됐다고 12일 발표했다. 이 수치는 5월보다 0.8%포인트 높아진 것이며, 2013년 6월 이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대치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연방준비은행은 앞으로 3년 동안의 물가 상승 기대치는 3.5%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수치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치 2%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지만, 연준은 최근의 물가 오름세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식품 가격이 앞으로 1년 동안 7.1%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휘발유 가격은 9.2% 상승할 것으로 봤다. 이런 기대치는 최근 미국의 물가가 생필품부터 목재, 중고차, 집값까지 모두 들썩이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식품 가격은 지난해 중반부터 이어진 전세계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며, 이 여파는 저소득 국가에서 이미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유엔이 경고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등 5개 유엔 기관들은 이날 발표한 ‘2021 세계 식량 안보와 영양 상태’ 보고서에서 지난해 영양 공급을 충분히 받지 못한 인구가 전세계인의 3분의 1 수준인 24억명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한해 전보다 3억2천만명 증가한 것이다. 이 가운데 10억명 정도는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의 수석 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은 “식량 위기는 곡물 가격 상승과 소득 감소가 겹치면서 나타나고 있다”며 “두 요인의 결합이 끼치는 충격은 파괴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곳곳에서 사회 불안이 발생하고 생계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이주민이 급증할 것으로 우려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의 물가 상승세가 장기 추세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미국 등 부유한 나라의 물가 하락에 기여했던 세계화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으로 퇴조하면서 수입품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가 2018년 1월 3.1%에서 3년 만에 19.3%로, 6배 이상 높아졌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도 같은 기간 8%에서 20.7%로 상승했다.
미국과 중국 등의 경제활동인구 감소 추세에 따른 소비 성향 증가, 물가 하락에 기여하던 온라인 상거래 제품 가격의 오름세도 물가를 압박하는 요소라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 웰스파고은행의 선임 경제학자 세라 하우스는 “지난번 경기 주기 동안 저물가 환경 조성에 기여하던 요소들이 약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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