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의 여성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 주지사가 10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1명의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앤드루 쿠오모(63) 미국 뉴욕 주지사가 10일(현지시각)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30년 동안 중앙 무대에서 탄탄대로를 걸으며 대선 주자급 인기까지 얻었던 그는 내년 주지사 4선에 도전도 못해보고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방송 생중계 회견을 통해 “내가 지금 (뉴욕주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물러나서 주정부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퇴는 14일 뒤에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쿠오모 주지사의 사퇴 발표는 지난 3일 그가 뉴욕주의 전·현직 직원 11명을 성추행했다는 뉴욕주 검찰의 발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 보고서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키스 등 신체 접촉을 하고 부적절한 발언들을 했다고 자세히 기술했다. 지난해 12월 전직 보좌관 린지 보일런의 폭로를 시작으로 쿠오모 주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공개 주장이 잇따르자, 제임스 검찰총장은 지난 3월 독립적인 조사에 착수해 179명을 인터뷰하고 7만4000건의 증거들을 검토한 뒤 이같은 결과를 내놨다.
검찰의 발표 직후 쿠오모 주지사가 속한 민주당 안에서부터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내표 등은 “쿠오모 주지사가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고, 뉴욕주 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쿠오모 주지사 탄핵소추 움직임도 일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검찰 보고서에) 묘사된 것과 실제 사실은 매우 다르다”며 직을 유지할 듯한 태도를 보여왔으나, 갈수록 사면초가에 놓이자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그는 지난해 뉴욕주 관내 요양원에서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축소 발표한 의혹으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날 사퇴를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으로 간주돼선 안 되고 이번 조사가 “정치적 동기를 가진 조사”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사법 체계에 공정성이 결여되거나 편견이 있으면 직접 당사자 뿐 아니라 모든 이가 걱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추행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뉴욕주 행정이 정상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성추행 피해를 공개한 직원들에 대해 “너무 가깝게 생각했다. 불쾌한 마음이 들게 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세 딸을 향해서도 “내가 고의로 여성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여성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진심으로 알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너희들의 아빠가 실수를 했고, 사과했으며, 이걸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쿠오모 주지사의 사퇴 발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계인 쿠오모 주지사는 1983년부터 12년 동안 뉴욕 주지사를 지낸 아버지 마리오처럼, 2011년부터 내리 3선 뉴욕 주지사를 지낸 유명한 2세 정치인이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주택도시개발부 차관보(1993년)를 거쳐 장관(1997년)을 지냈으며, 2006년에는 뉴욕주 검찰총장에 당선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중계 일일 브리핑으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대비를 이루며 인기가 올라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쿠오모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세우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바이든 정부 초대 법무장관 후보군에 들기도 했다. <시엔엔>(CNN) 유명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그의 동생이다.
쿠오모 주지사가 물러나면 남은 임기는 캐시 호컬(62) 부지사가 이어받는다. 그는 뉴욕주 첫 여성 주지사가 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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