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통역사로 일하던 현지인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입국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민간 업체에서 군 지원 업무를 하던 아시아 출신 노동자 상당수는 갑작스런 철수로 귀국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떠돌고 있다. 새크라멘토/로이터 연합뉴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철수하면서, 현지에서 미군 지원 업무를 맡던 민간 보안업체 소속 아시아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8월말까지 철수를 완료하기로 한 가운데 수송이나 건설 사업, 기지 유지 관리 등을 맡던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 수천명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군이 아프간에 20년 가량 주둔하면서, 수송이나 건설 사업부터 청소, 요리 등 다양한 지원 업무를 위해 많은 민간 업체들이 현지 미군 기지에 함께 머물렀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사관 자료를 보면, 현지 주둔 비전투 민간 인력은 지난 4월 6399명이었고, 미군이 본격 철수에 나선 6월 초에는 2491명으로 줄었다.
미군이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 기지 등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철수하는 바람에, 민간 업체 소속 노동자들도 갑자기 현지를 떠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출신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현지 호텔에 묶여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처에 따라 항공기 운항이 중단된 탓이다. 현지에 묶여 있는 노동자 대부분은 지난 6월15일 두바이에 도착한 이들이라고 <에이피>는 전했다.
통신은 “건설·토목 회사 플루어 소속으로 아프간 현지에서 일하던 필리핀 노동자 10여명이 두바이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며 “하지만 고향에 아직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모두 몇명인지는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두바이 체류가 거의 두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수중에 돈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무 조처도 취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는 소속 기업에서 제공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미군은 이들 노동자 문제가 소속 업체 소관이라고만 밝혔으며, 민간 업체들도 상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시아 담당자 존 시프턴은 “모두가 철수 미군과 아프간 통역사, 현지 주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떠돌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소속 기업과 자국 정부가 귀국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만 말할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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