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아프가니스탄 세번째 도시 헤라트를 점령한 탈레반 전사들이 주지사 사무실 앞에 서 있다. 헤라트/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 함락을 눈앞에 뒀다. 예상을 뛰어넘는 탈레반의 속도전에 미국, 영국은 자국민의 신속한 피신을 위해 보호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통신 등 보도를 보면, 탈레반은 이날 현재 아프간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카불 이외의 주요 대도시를 사실상 모두 점령했다. 탈레반은 전날 밤 아프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자 발흐주의 주도인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했고, 이튿날에는 카불과 접한 낭가르하르주 주도인 잘랄라바드를 점령했다. 앞서 탈레반은 지난 12일 아프간 2대, 3대 도시인 남부 칸다하르와 서부 헤라트를 점령했다.
탈레반은 14일 카불 남쪽 11㎞ 지점 로가르주 지역까지 진격해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곳까지 무너지면 사실상 카불이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 34개 주도 가운데 27개를 점령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발표된 이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불려오던 탈레반은 최근 7일 동안 총공세를 펼쳐 카불 주변 일부와 아프간 중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확보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지난 20년간의 성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을 당부했다. 하지만 가니 대통령과 회동한 지역 군벌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탈레반에 항복하고 있다.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중국, 파키스탄, 유엔(UN) 대표단 등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주요 인사들과 만나 진행한 평화협상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1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공원에 북부 지역에서 탈레반과 정부군의 전투를 피해 피난온 가족들이 앉아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아프간 정부군의 규모는 30만명으로, 20만명으로 추산되는 탈레반에 앞선다. 하지만 임금을 타기 위한 허위 등록 등 허수가 많아, 실제 정부군 규모는 6분의 1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똘똘 뭉쳐 싸우는 반면, 정부군은 급격히 사기가 떨어졌다. 가니 대통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군에 쏟아부은 830억달러(약 97조270억원)의 막대한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아프간에 머무는 자국민 대피에 몰두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 보도 등을 보면, 미국은 주아프간 외교관들의 철수를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2일 자국민 대피를 위해 3천명의 병력을 아프간에 배치하기로 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자국민 대피를 지원할 미군을 2천명 더 늘려 5천명까지 승인했다.
주아프간 영국 대사인 로리 브리스토도 오는 16일 저녁까지 아프간에서 탈출할 예정이다. 브리스토 대사는 애초 이달 말 탈출할 예정이었지만 탈레반의 카불 접수가 가시화하면서 일정을 당겼다. 영국은 약 3천명의 자국민과 2천여명의 아프간 통역사 등을 대피시킬 계획이며, 이를 위해 약 600여명의 군 병력을 보낼 예정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