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관련해, 아프간 정부의 붕괴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인정하면서도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옳은 결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머물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으로 복귀해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의 공개적 발언은 지난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 인수를 선언한 뒤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슬프다면서도 “내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로 한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달 말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 철수해 20년 지속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하게 재확인한 것이다. 그는 “아프간에서 우리의 임무는 (테러 대응이지) 국가 건설이 아니었다”며, 10년 전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 제거 등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나는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좋은 시기라는 것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20년 만에 어렵게 깨달았다”며 “그게 우리가 여전히 거기에 있던 이유”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러면서 “진실은, 이것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는 것”이라고 말해, 아프간 정부 붕괴와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 속도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정보 실패나 오판에 대해 부연하지 않고, 아프간의 지도자들을 비난했다. 그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아프간의 정치 지도자들은 포기하고 나라를 떠나 도망갔다. 아프간 군 일부는 싸우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무너졌다”고 말했다. 아프간 수도가 탈레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재빨리 국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등을 비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지난 주 벌어진 상황은 아프간에서의 미군 개입을 지금 종식하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입증한다”며 “아프간 군대가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며 죽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또 “내 결정이 비판받을 것을 안다”며 “그러나 이 결정을 다음 대통령에게 넘겨주기보다는 모든 비난을 내가 떠안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는 분쟁에 무기한 남아서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과 아프간의 조력자들을 민간과 군의 항공기를 동원해 안전하게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아프간 혼란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이에 책임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내가 취임했을 대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협상한 합의를 물려받았다”며 “그 합의에 따르면 미군은 올해 5월1일까지 철수하기로 돼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정부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1만5500명에서 2500명으로 줄였고 탈레반은 2001년 이후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해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맺은 합의를 이행할 것인지, 탈레반과 다시 싸울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설명했다. 아프간 철군은 자신의 소신에 따른 것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탈레반의 기존 합의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여러 건의 성명을 내어 “아프간은 미국 역사상 가장 창피한 군사적 결과”라며 “내 행정부였다면 모든 민간인과 장비를 (군대 철수 전에 먼저) 빼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이런 공방을 두고 트럼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는 트위터에 “두 대통령 모두 올바른 목표를 갖고 있었으나 둘 다 그 목표를 올바르게 추구하는 데 실패했다”고 전·현직 대통령을 모두 비판했다.
아프간에서는 미군 철수가 완료되기도 전에 지난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재장악하면서 미국 요원들과 민간인, 아프간 국민 등이 일제히 탈출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충분한 정보와 사전 준비 없이 철군을 서둘러 참사를 자초했다는 목소리가 미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현 상황을 1975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패망하면서 황급히 사이공을 탈출하던 장면에 빗대 “바이든의 사이공 순간”(스티브 스컬리스 하원의원)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아프간 주둔 미군을 9·11 테러 20주년인 오는 9월11일 이전에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목표 시점을 8월 말로 앞당겼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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