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주제프 보레이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오른쪽 위)가 17일 회원국 외무장관들과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에 대한 주요 국가의 태도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주제프 보레이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가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레이 고위대표는 이날 탈레반과 대화 의사를 밝히고 “하지만 이는 탈레반의 지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긴급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 뒤 “인도주의적 재앙과 이주민 관련 참사를 막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프간에 머물고 있는 외국 테러 집단의 귀환을 막는 수단에 초점을 둔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럽연합을 위해 일하던 아프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공항으로 이동하게 하려면 탈레반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것”이라며 “다만, 우리는 그들이 국제적 의무를 존중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화롭고 포괄적인 분쟁 해결,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한 아프간 사람들의 기본권 존중, 테러 단체의 아프간 영토 사용 방지 등을 탈레반에 요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탈레반과 관련한 공동 전략을 논의할 주요 7개국(G7) 화상 정상회의를 다음 주에 열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백악관은 두 사람이 “동맹국 사이의 긴밀한 협력 필요성을 논의했다”며 “국제 사회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포함한 아프간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미국 은행에 있는 아프간 정부 자금 수십억달러를 동결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이 조처는 탈레반이 이 자금을 빼내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조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프간 중앙은행은 지난 4월 기준으로 94억달러(약 10조8천억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미국 내에 있지만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의 강경한 태도와 달리 중국 외교부는 17일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아프간의 새 정권”이라고 표현하는 등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1970년대 소련 시절 아프간을 침공했던 러시아는 좀더 유보적인 자세를 드러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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